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도시에 속하는 건축은 소멸과 생성의 과정을 반복한다. 예술가의 집은 이미 여러 차례 용도 변경이 있어 왔다. 그 때마다 내부의 벽이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했다. 도시와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산텔리아와 마리네티가 '세대마다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생성과 소멸의 굴레는 필연인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리노베이션은 어떤 의의를 갖는가? 어떻게 하면 기존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프로그램, 실의 영속성을 거부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집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동의 기억으로 작용한다. 그 건물을 이용했건 아니건, 그 이미지는 기억에 남아 시간이 지나도 작동한다. 이러한 가치는 어디에서 올까? 바로 외부의 이미지다. 내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기억으로도 남아있지 못한다. 또한 그 내부는 복도에 따른 실 배치, 벽에 의한 실 구획 등 건축의 이용을 명확히 규정하며 우연성과 변화를 전혀 수용하지 못한다. 현대 도시는 끊임 없이 변화하며 예측 불가능하다. 더 이상 건축물은 프로그램과 사람들의 이용 방식을 규정해서는 안된다. 이에 따라 기존 건물의 외벽만을 남겨둔 채, 내부를 모두 비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비워진 내부는 이제 대학로 일대가 요구하는 우연적 사건의 발생지가 된다. 실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시대에 따른 프로그램의 수요는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실의 필요의 궁극적 목적은 공간의 구분이다. 공간의 구분은 벽에 의해 달성되며 벽은 사람들에게 공간의 점유 가능성을 제공한다. 움직이는 벽은 시대에 따른 프로그램의 요구를 어떠한 추가적 증축 없이도 가능하게 한다. 움직이는 벽은 구조체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벽의 높이를 층고보다 낮게 설정해 구조가 아님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이는 공간들이 구분돼 있으면서도 구분돼 있지 않은 듯한 감각을 준다. 이용자들은 벽을 움직이게 함에 햇빛의 수용과 환기 등 계절에 따른 선택, 공간의 필요에 따른 선택 등 스스로 건물의 이용 방식을 결정한다.
영속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 '실'은 이제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것이 바뀐다.
그럼에도 영속적인 요구가 있다. 사람들은 쾌적한 실.내외 환경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의 공원과 외부 공간의 이용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외부 공간에서 무언가 활동을 하는 날은 '날이 좋은 날'이다. 봄과 가을에 국한돼 있는 것이다.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도 이와 같다. 예술가의 집은 비워진 내부의 천창에도 불구하고 계절에 따라 선택될 수 있는 환기 시스템에 의해 쾌적한 실내외 환경을 얻을 수 있다. (여름에는 원활한 공기의 유동, 겨울에는 온실 효과) 이에 따라 예술가의 집은 영속적으로 쾌적한 환경을 갖게 되고, 다양한 활동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기존 조적 외벽은 새로운 구조적 의미를 갖는다
비워진 내부. 내부에서는 어떠한 이벤트도 수용 가능하다. (파빌리온 설치 등)
평일의 Learning Space는 주말에 이용객들이 머무는 장소가 된다. 움직이는 벽에 따라 공간의 경계,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변화한다.
공예 스튜디오로 사용되는 증축부. 공예는 소음이 발생하며, 집중이 필요한 공간이다. 이에 따라 상층부에 배치하되, 경계가 명확하지 않도록 열어 놓는다. 그 아래에서는 가변적으로 이용되는 전시 공간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구성된다. 열리고 닫히는 벽은 이용자들이 계절에 따라, 점유 공간의 필요성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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