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최종 산물은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때로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현실의 어떤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얻는다. 이 이미지는 꽤 강력하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작용해,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알게 된 장소를 찾게 만들기도 한다.
눈여겨볼만한 점은 이미지가 물리적 공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즉 촬영을 위해서는 실제하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는 배우가 움직일 장소, 카메라가 놓일 자리, 조명이 놓일 자리, 운송수단이 주차될 장소 등 수많은 공간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장소들은 한 때 존재했으나, 대게의 경우 기록되지 않는다.
영상을 제작하는 건 곧 이미지를 만드는 행위이며, 이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영상을 제작하는 이는 그 자신이 바라보는, 혹은 관객이 보길 바라는 방식으로 카메라 렌즈에 도시의 공간을 담는다. 달리 말해 그의 방식대로 공간을 해석한다.
즉, 이러한 영상 제작 과정에 대한 위치 정보는 공간에서부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도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도식은 공간과 이미지를 병치할 때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 공간의 모사체가 필요하다. 현실의 모사체로 존재하는 3D 공간인 디지털 트윈이 이를 위한 매체로 적절하리라 생각되는 이유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과 최종 이미지의 중간에 자리하며, 촬영 과정에 만들어지고, 쓰이며, 최종적으로는 데이터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영상제작자들은 영화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 상에서 제작에 필요한 요소들을 배치한다. 실제 제작 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예측하고 통제해 다양한 최종 이미지를 먼저 만들어본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트윈 상에는 영상 제작 과정에 관한 위치 정보들이 수집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오픈랩이라는 디지털 트윈 플랫폼에는 '영화 촬영에 대한 공간 정보'가 축적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도시라는 공간이 어떻게 이미지로 편집되는지 알 수 있다. 디지털 트윈에는 이미지 바깥 공간이 존재한다. 이미지가 잘라낸 공간 뒤편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와 도시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알게 되는 셈이다.
<도둑들>의 건물 외벽 와이어 액션씬은 두 장소를 합성한 결과물이다. 인천 가정동의 개나리 아파트에서 총격전을 찍고, 진양상가를 배경으로 둘을 합성했다.
이때 배경이 되는 진양상가의 이미지는 제작자에 의해 가공이 가해졌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학교 건물은 덕수중학교로, 본래 진양상가 동쪽에 위치한다. 이걸 좌우반전해 화면 오른 쪽에 진양상가가 있는 것처럼 꾸며냈다.
<도둑들>은 2012년에 만들어졌다. 현재 진양상가 인근의 모습과 영화 속 진양상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큰 빌딩들이 많이 생겨, 영화 속처럼 뻥 뚫린 풍경 대신 닫힌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영화 속의 진양상가 풍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볼 수 없게 된 어떤 풍경을 기록한다. 이러한 영화 속 이미지는 그리고, 에스맵 상의 2013년 서울 모델링을 통해 다시 재현된다.
이렇게 서울과 인천의 한 공간을 때어와 영화는 합성한다. 왼 쪽 사진에 담긴 영화의 장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소는 부산이었다. 제작자는 이 장소를 부산이도록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건물에 들어가는 장면은 부산 중구 동광동의 '부산 데바트'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즉, 제작자는 서울과 인천의 공간을 통해, 영화 속 부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영화를 보는 동안 서울과 인천의 한 장소는 부산이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배경이 서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의 상징이라고 보여지는 요소들을 끌고 온다. 한강,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강남의 빌딩 숲, 사방에 간판이 걸린 상점가 거리가 그 예이다. 이는 외국이 바라보는, 혹은 알려지고자 하는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어떤 맥락에서 촬영지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구성된 방식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생충>의 자하문터널 장면은 영화 내에서 하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이 씬은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의 격차를 잘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높낮이 심한 지형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가 만든 이 이미지는 우리가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처럼 촬영 현장에 대한 기록은 이미지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도는 실제하는 공간과 이미지를 나란히 놓고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공간과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저장된 정보들이 쌓여 충분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이룬다면, 이를 영화 제작자들의 레퍼런스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강에 있는 다리를 배경으로 숄더샷을 촬영하고자 하는 영화 감독을 가정하자.
1. 에스맵에 저장된 영화 환경 데이터베이스에서 #한강 #다리 #숄더 샷 같은 형식의 검색어로 검색을 실행한다.
2. 영화 촬영지들 중 해당 키워드를 가지는 배경들이 지도에 표시된다.
3. 감독은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해, 해당 환경에서 촬영하기 위한 조건들을 확인한다. 감독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특정 장면을 레퍼런스로 삼고자 하면, 거기 표현된 차량 통제 정보, 그를 위한 비용 등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