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은 ‘학원가’ 라는 독특한 장소성을 지닌 대한민국의 몇 장소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치키즈’ 라는 말로 정의해 부른다. 이 말은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을 받으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입시와 공부에 매진했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한 지역의 장소성이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하는 용어로 쓰이는 곳. 대치동. 누군가는 이를 긍정적으로, 누군가는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도시를 관찰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대치동은 어떤 모습인가? 대치동의 학원가는 수많은 중·고등학생들과 대한민국 입시의 이해관계자들이 오가는 장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만큼, 학원가에 초점을 놓고 관찰하면 특이한 도시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특정 시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리기도 하고, 여러 상황이나 시간대의 변화에 따라 인구의 밀집 및 이동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본 글은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언론에서 단적으로 ‘사교육 공화국’ 으로만 묘사하는 학원가의 모습을 넘어,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을 대치동 학원가의 건축적 일면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이의 사회적 문제와의 연계성에 대해서 고민해보고자 한다.
<분석 대상 선정> 본 연구는 대치동의 학원들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관찰하고자 하는 학원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서울시 강남구 공공데이터(강남구 열린 데이터 광장: https://data.gangnam.go.kr/)을 통해 강남구 내의 학원/교습소의 위치 및 상세 정보를 열람 및 분석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원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1) 강남구 내 전체 3,000여 개의 학원에서, 행정구역을 제한한다. 분석하고자 하는 영역인 대치동 학원가는 행정동 상 대치 1동, 대치 2동, 대치 4동에 위치한다. 이 행정동 바깥에 위치하는 학원은 관찰하지 않는다. 2) 주어진 공공 데이터 스프레드시트에는 학원과 교습소에 대한 정보가 섞여 있다. 학원과 교습소는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의 정의 규정 등에 의하여 각각의 성립 요건과 법적 근거가 다르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 학원 1) 동시 10인 이상의 학습자를 교습한다. 2) 교습과정별로 정해진 단위시설별 기준에 따라 교습과 학습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유지하여야 한다. 관련하여 일시수용능력인원의 경우, 학원은 1㎡당 1인 이하의 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 3) 교습 과정에 해당하는 여러 과목을 교습할 수 있다. 4) 강사를 채용할 수 있다. 5) 구비 서류를 통한 신청이 등록요건이다. (심사 후 등록되어야 운영 가능) - 교습소 1) 동시 9인 이하의 학습자를 교습한다. 2) 교습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만 갖추어도 충분하다. 관련하여 일시수용능력인원의 경우, 교습소는 1㎡당 0.3인 이하의 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 3) 단일 과목 만을 교습할 수 있다. 4) 대리 교습은 불가하다. 따라서 강사를 채용할 수 없다. 5) 구비 서류를 통한 신청이 신고 요건이다. (신고 시 운영 가능) (출처: 국가정보법령센터) 파악하고자 하는 대상은 학원이므로, 스프레드시트 상에서 교습소 관련 정보는 모두 제외한다. 3) 데이터 상에는 각 학원의 분야명 / 교습계열명 / 교습과정목록명 / 교습과정명이 명시되어 있다. 이 안에는 대상으로 하는 연령층이 무엇인지(유아, 초·중등, 고등, 성인 등), 구체적으로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지 (음악, 서예, 독서실) 등이 명기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상 연령층이 ‘고등학생’인 학원으로 한정한다. 4) 본 연구에서는 보습(일반적 고등교육 과정의 국어, 수학, 영어 따위의 과목) 학원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따라서 대치동 내의 예체능 계열(무용, 음악, 미술, 서예 등)학원은 제외한다. 5) 보습 학원 중에는 일반적인 학원의 모습을 갖춘 학원도 있으나, 포스트 코로나에 맞춰 적응한 학원도 있다. 바로 인터넷 강의(이하 ‘인강’) 송출 전문학원이 그것이다. 작은 사무실에 인강을 촬영할 수 있는 스튜디오만 갖추어 놓고, 온라인 상의 플랫폼에 촬영한 인터넷 강의만을 업로드 하여 학생들을 교습하는 학원이다. 법적 용어로는 ‘원격학원’ 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학원들은 ‘학원 정원’에 비해 굉장히 작은 일시수용능력인원을 갖추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원격학원은 제외한다. 6) 기타 입시 컨설팅 학원은 제외한다. 입시 컨설팅은 그 교습계열을 ‘보습’ 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학원이 실제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일반적인 보습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입시 컨설팅’은 입시제도가 복잡하고 다변화함에 따라 나타난 학원 서비스로서, 학생의 내신 점수와 수능 점수 등을 기반으로 그 학생의 희망사항 등을 고려하여 지원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에 전략적으로 접수하도록 지원하는 서비스이다. 이는 위 4)의 분류와는 상충되므로, 단순히 입시 컨설팅만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학원은 대상에서 제외한다. 7) 이렇게 대상을 분류한 결과, 약 909개의 학원이 대상 학원으로 선정되었다.
<분석 대상 분류> 선정된 909개 학원을 대상으로 학원의 규모와 각 학원 규모별로 다니는 학생의 수를 분석한다. 먼저 공공데이터 상에 제시된 학원의 정원 수(정원 합계 항목)를 기준으로 학원을 소형학원 / 중형학원 / 대형학원으로 분류한다. 일반 수요자들(학생 및 학부모)의 거래계에서의 통상적인 관념과 학원의 일시수용능력인원 수, 그 밖의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인원 수 기준을 산정한다. 이에 따라, 소형학원의 정원 수는 0~200명, 중형학원의 정원 수는 200~800 명, 대형학원의 정원 수는 800 명 이상인 학원들로 설정한다. <분석 진행 및 결과> 분석 결과, 909개의 학원 중 소형에 해당하는 학원은 508개, 중형 학원에 해당하는 곳은 212개, 대형 학원에 해당하는 곳은 189개 소로 나타났다. (첫 번째 차트) 각각의 학원은 의무적으로 정원을 신고해야 한다. 전술한 사항을 고려하여 중복되는 데이터를 제외한 후 학원에 다니는 인원 수를 학원의 규모 별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차트) 소형 학원에 다니는 인원 수는 전체 638,823 명의 인원 중 40,986명으로, 전체 6%의 비율을 보였다. 중형 학원의 인원 수는 76,944명으로, 전체 대비 12%의 비율을 보였고, 대형 학원에 다니는 인원 수는 520,893명으로, 전체 대비 82%의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이는 중형 학원과 대형 학원의 갯수의 차이가 다소 적음(약 20여 개소)에도 불구하고 각 학원에 다니는 인원의 수는 큰 편차가 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 한계> ‘학원 수’ 차트의 학원의 개수에 대해서는 한 학원의 브랜드가 여러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곳도 중형 학원과 대형 학원 중에 나타난다(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따라서 한 학원이 건물 10개 소에 위치하고 있다면, 해당 학원은 중복되어 산출되었다. 따라서 위 숫자는 정확한 학원의 수를 나타낸다기 보다는, 대형 학원이 위치하고 있는 건물의 수를 나타낸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학원 별 인원 수’ 차트의 전체 인원 수는 각 학원의 신고된 정원을 산술적으로 더한 것이다. 이는 대치동 학원가에 실제로 다니는 학생 수보다 전체 학생의 수가 더 많이 집계되었음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 한 학생이 3, 4개의 학원을 다니는 경우 등은 별도로 고려하기 어려워 분리하지 않았다. <의의 및 시사점>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형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형 학원의 인지도와 홍보 방식에서 다른 규모의 학원들과의 차이점, 학원 자체의 인지도 보다 강사의 인지도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경향성) 등으로 미루어보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위 영상은 대치동의 건물들에 따라 일대일 대응하도록 대형학원의 위치를 매핑한 것을 표시한 영상이다. 주된 도로를 기준으로 학원들의 배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학원들의 위치를 기준 삼아, 한 학원 당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를 바탕으로 상대적인 가중치를 산정해 보면 아래와 같이 다이어그램화 할 수 있다. 아래 영상은 시간대별로 대치동의 어떤 위치에 인원이 밀집되는지 상대적인 정도를 원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원이 많이 중첩되는 영역일 수록 밀집도와 혼잡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타임 스탬프 지도를 바탕으로, 이런 번잡한 동네에서 살아내는 학생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관찰해본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고등학생 3명을 정했다. 이 학생들은 올해 수능을 준비하는 현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각자 사는 곳과 학교는 다르지만, 이 대치동이라는 동네에서 학원이라는 요소로 인해 삶의 경로가 교차한다. 각 학생들이 살아가는 시간표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학생 A는 주말 시간표도 따로 제시되어 있다). 각 학생들이 시간대 별로 따라다니는 영역을 움직임으로 지도 상에 표현해 본 것이 위 사진이다. 지도에서 활성화되는 각 활성화 포인트는 집, 학교, 학원, 일정 사이 식사 장소 등이다. 물론 학생들은 일탈을 하지만, 일상에서 다소 적은 영역을 차지하는 일탈의 장소성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입을 위해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소화해야 한다. 작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문제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시간 내에 일정한 수준의 문제를 푸는 능력이 배양되어야 하는 만큼, 이는 훈련과 같은 반복적인 과정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 페르소나와 같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입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대치동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규모 강남 아파트 단지를 배후로 형성된 대치동 학원가. 그리고 이 곳을 오가는 학생들의 집합적 이동이 도시 현상으로 발현되는 사이, 입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짐에 따라 학원가는 조밀화된다. 이런 도시 현상이 집약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건물이 등장한다. 이 건물은 도로명주소상으로는 '서울시 강남구 도곡로 77길 3'에 위치하고 있고, 건물의 이름은 '두각 본관'이다(이하 단순히 '건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건물의 어떤 점이 주목할 만한가? 이 건물은 2022년 초, 대치동 한복판에 완공되었다. 완공되기 전, 이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3층의 상가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당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 이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이 건물의 특별한 점은 거점이 밀집되어 '도시적 맥락의 건축화'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앞서 우리는 학생들의 하루를 추적하면서, 학생들이 어느 장소를 오가는지를 살펴보았다. 학생들은 주로 학업 보조 시설(독서실, 스터디 카페 등)이나 학원 근처의 음식점, 그리고 학원을 거점 삼아 이동했다. 대치동에서 시간은 곧 금이다. 따라서 이동 시간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학업의 시간-효율적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심각한 문제다. 이런 시간은 1분이라도 더 줄여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런 유형의 건물은 과거에는 대치동에는 전혀 없었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몇몇 대형 재수 종합 학원 등에 이런 유형이 더러 있었으나, 이는 그 건물의 사용자들이 '재수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용자가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대치동에도 비로소 이런 유형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학원이 추구하는 방향, 그리고 일반 수요자(이 글에서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식이 어떻게 전환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지하 1층은 식당, 1, 2, 3층은 D 학원, 4, 5층은 독서실, 5층의 일부 ~ 8층까지는 S 학원이 점유하고 있다. 이 건물의 사용자는 이동 시간을 많이 소모할 필요가 없다. 고작해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간을 이동하는 시간이 이동시간의 전부이다. 이외의 학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 자습, 식사 등을 이 건물 하나에서 해결할 수 있다.
위 이미지는 대치동 전반에 퍼져있는 어떻게 이 건물 하나로 집약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치동 전체에 저런 시설들이 퍼져있는데 반해, 이 건물은 그 시설들을 집약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도시적인 차원에서, 두 개의 상반된 이야기가 있다. 개인의 차원에서 학생들은 대치동의 여러 거점을 이동해 다녔다. 거점을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사이 시간'은 시간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비효율적이고, 학생들이 일탈할 경향이 더 크다. 그러나 이는 한 거점에서 떠나 다른 거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학생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휴식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또 사이 시간에 이루어지는 친구들 사이의 만남(같이 저녁 먹기)등이 이 세대에 꼭 필요한 인적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한다. 건축의 차원에서 학생들은 한 거점에 고정된 생활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학생 간 인적 교류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또 학생이 의식적으로 휴식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으면 주의 환기가 되기 매우 어렵다. 관성에 의한 공부를 하는 대치동 학생의 특성상 의식적 휴식시간의 확보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학생들이 학업 이외의 길로 일탈할 가능성이 작고, 이동에서 오는 피로감도 적다. 시간 관리의 측면에서는 효용감이 증가할 것이다. 이런 거점들이 집약되는 현상은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형 쇼핑몰, 아파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본 글에서 소개한 사례의 특이점은 이런 집약 현상이 이제 산업화된 학원 업계에서도 비로소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본 글에서는 건축적 현상 하나로 이 사례를 도식화해 표현했으나, 이런 학원가의 문제는 다른 여러 거시적 사회적 이슈, 도시적 이슈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요즘 들어 우리나라를 불안감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출산 문제와 그에 따른 인구 양상의 변화 관련 이슈고, 또 다른 문제는 대치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교육 정책의 변화다. 마지막은 이 일대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노후 단지의 재건축 관련 이슈다. 특히 이 지역은 강남 지역의 대표적인 동네인 만큼, 부동산 관련 이슈에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떻게 보면 이 건물의 탄생에는 위의 모든 이슈들이 각자 어느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예측은 쉽지 않다. 조밀한 사회에서 작은 요인의 변화가 예상할 수 없는 큰 변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상황 속에서 또 어떤 요구에 부응한 도시 공간적 변화가 이루어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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