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1 추상화하기에서 선례분석을 할 집으로 네임리스 건축의 아홉칸 집을 선택하였다.
아홉칸 집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 와 『완전히 불완전한 사전』,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첫 번째 책은 직접 아홉칸 집에 생활하고 있는 에이리AeLe 가족과 건축가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는 책이었고, 두번째 책은 건축의 개념들에 대해서 네임리스 건축의 생각을 작은 사전처럼 적은 책이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아홉칸 집의 주제는 비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 사진을 통해서 접했을 때부터 안밖이 모두 노출 콘크리트인 과감한 마감에 놀랐었다. 그리고 자료를 조사하며 건축가가 어떤 구조나 장식을 더하기보다는 최대한 비워냄을 통해 공간을 사람과 그 이야기로 채우려고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건축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집도 그러하다.
완벽한 집보다 덜 만들어진 집을 선호한다.
덩그러니 내던져진 아홉 개의 칸은 마감도 되지 않고
방의 목적도 정해진 바 없는 그저 비워진 구조물이다.
살아갈 사람은 방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가구를 들여 생활의 흔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여백은 텅 비워져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 中』
자신들이 지향하는 건축 중 하나가 ‘덜 만들어진 집’이라며 그런 집은 “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와 유동성에 대응해주면서 집이 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다" 고 했다.
이런 내용을 통해 아홉칸 집에서 중요한 요소를 '비움'이라고 파악했다. 건축가가 구조나 장식을 더하기보단 최대한 비워내어 그 여백을 사람과 시간으로 채우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비움이 실제로 어떻게 아홉칸 집이라는 공간에 반영되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내용이 건축가가 일부러 전형적인 주거의 평면을 탈피하고자 정방형으로 설계하였고, 위계없는 공간을 통해서 사용자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공간의 위계가 수평적이라면 사람이 어느 공간이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용될 수 있는 ‘의도 없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학기 건축학개론에서 배운 모폴로지로 공간의 위계를 조사하고 통합도라는, 공간의 위계를 보여주는 지표를 구해 보았다. 결과는 아홉칸 집이 각 방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위계를 가진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동적인 공간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통합도라는 수치만을 보면 실내에 아무런 벽이 없는 "극단적인 비움'의 상태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공간이 잘 사용될 수 있을까? 주거의 형태에서 프라이버시의 문제도 있거니와 공간이 너무 넓게 뚫려 있으면 사람이 도리어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지 막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네임리스 건축이 의도한 것처럼 방들의 연결이 긴밀하되, 사용자가 유동적으로, 주체적으로 공간을 채워나가게 하려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되었다.
공간을 변형해가며 이에 대해서 탐구했다. 처음에는 아홉칸 집의 평면에서 초기 개구부 크기를 설정하고 개구부에 1/2씩, 1/4씩 등비급수를 활용해 무한히 곱해나가면 평면이 어떤 모양이 될지를 스터디 해 보았다. 대부분의 경우는 아홉칸 집의 평면에서 크게 구성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개구부의 초기 넓이를 1.8m로 잡고 1/2씩을 무한히 곱하였을 때 개구부의 넓이가 3.6m가 되며 벽이 아예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너무 아홉칸 집의 평면을 완전히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홉칸 집의 한 칸의 단위인 3.6m를 셋으로 나눠 1.2m 단위로 벽을 조절해 보는 스터디를 진행하였다. 이 스터디를 하다 보니 모서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공간에 개구부가 크게 뚫리는 등 많은 변형이 있었다. 이런 스터디를 진행하고 스터디 모델을 만들어보며 정방형의 공간에 어떤 넓이로 어느 곳에 개구부가 뚫리느냐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와 사람의 시선, 동선이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결국 핵심은 얼마나 비우느냐가 아니라 한 칸이 다음 칸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연결성에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집중하게 되었다.
각각의 한 칸만 놓고 보면 다를 이유가 없는 그리드 한 칸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어떻게 될까를 알아보았다. 크리틱을 진행하며 지금까지 구조를 변형하고 실험해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규칙을 정하고 이를 변주하던 것이 알고리즘과 비슷하고, 이런 과정이 Phase 1의 주제인 추상화하기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규칙과 알고리즘은 현실의 건물을 코드 속에 존재하는 핵심 논리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홉칸 집'에는 콘크리트의 두께, 창호의 프레임, 가구, 배수관, 공사비 같은 구체적인 현실의 정보들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을 만들려면 이 수많은 현실의 데이터 중 ‘건축가가 의도한 가장 본질적인 공간 체계’만 선별하여 수학적 규칙으로 변환해야만 한다. 완공된 아홉칸 집이라는 선례에 갇히지 않고, 건축가가 공간을 만들어내던 '생성 원리(Logic)' 자체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의 공간을 나누는 벽 12개와 외부를 구성하는 벽 10개를 1/3씩 변형하는 것으로 규칙을 생성했다. 내부벽은 8가지 상태로, 외부벽은 3가지 상태를 가능하게 했다. 이 두가지 조합으로 812×310, 4,057,816,091,836,416 개, 약 4,057조개의 방대한 경우의 수가 있다.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조사할 수 없기에 필터링을 거치게 했다. 출입구를 아홉칸 집과 같은 곳에 두 곳 지정하고 출입문으로부터 고립되거나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완결된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는 제거했고, 서로 대칭이나 회전을 통해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 또한 제거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 단위의 경우의 수가 남기 때문에 일일히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몬테카를로 무작위 추출*을 사용해 신뢰성을 확보하면서도* 거시적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추출한 무작위 표본을 이용해서 각 평면의 개방률에 따라 연결도, 통합도, 가시성을 조사한 공식에 따라서 계산하게 하였다. 모든 코딩을 내가 할 수 없기에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코드를 만들고 제대로 기능하는지 입력한 규칙들이 잘 반영되었는지를 검사하고, 도출한 결과를 확인하기에 편리하고 신뢰성 있게 하기 애쓰며 코드를 만들어나갔다.
만들어낸 코드를 개방률 0~100% 까지 각 구간마다 100개씩, 총 1000개의 표본에 적용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경향이 나타났다. 0~10% 구간은 완결된 평면이 나오지 않아서 필터링 단계에서 제거되었다. 10~20% 구간(첫 번째 사진)은 처음으로 9칸의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며 사람이 거주하고 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의 형태가 처음으로 완성되어 모든 수치가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다. 20~50% 구간(두 번째 사진)은 통합도와 연결도, 접근 깊이는 큰 차이가 없지만 가시성은 꾸준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이미 전 구간에서 물리적 연결이 끝난 상태이며 내부와 외부의 개구부가 커지기 때문에 통합도와 연결도는 유지되지만 가시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50~100% 구간(세 번째 사진)에서는 다시 통합도와 연결도, 가시성은 상승하고 접근깊이는 하락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내외부 벽이 점점 사라지고 개구부가 점점 커짐에 따라 구조물이 완전히 파빌리온처럼 열려버리는 구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아홉칸 집으로 돌아갔다. 아홉칸 집은 어느 곳에서 위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추이와 잘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홉칸 집은 자신의 개방률 구간에 전혀 맞는 수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통합도와 연결도는 월등히 높은 반면 가시성과 접근 깊이는 유의미하게 낮았다. 높은 통합도·연결도와 낮은 접근깊이는 그리드 평면 내에서 경계를 허물고 이동의 자유도를 극대화한 '자유로운 평면’ 특성을 입증한다. 하지만 높은 물리적 연결성에도 불구하고 가시성이 평균 수준인 것은 중앙에 있는 방의 L자형 벽 떄문이다. L자형 벽은 방에서 사람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허용하면서도 방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차단해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공간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기 떄문이다. 이는 '물리적 동선'과 '시각적 시선'을 정교하게 분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아홉칸이라는 제한된 격자 틀 안에서 위계 없는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거 공간에 필수적인 시각적 프라이버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최종 모형에서 동선은 빨간 실로, 시선은 아크릴 막대로 표현해 아홉칸 집 안에 있는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느낄지 표현해 보았다. 사람의 동선을 표현한 실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사람의 시선을 표현한 아크릴 막대는 벽과 개구부의 위치에 따라 끊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높은 통합도·연결도와 낮은 접근깊이를 가졌지만 평균 수준의 가시성을 가진 아홉칸 집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이번 단계의 주제인 추상화하기로 돌아가 보겠다. 이번 탐구은 완성된 건물을 거꾸로 추적해 건축가의 생성 원리에 접근한다는 Phase 1의 취지를 따라간 과정이었다. 현실의 구체적인 정보를 하나씩 걷어내고 벽과 개구부의 개폐 규칙만 남기자, '동선과 시선의 분리'라는 아홉칸 집의 숨은 원리가 수치로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이번 Phase 1의 아홉칸 집의 건축 개념은 ‘규칙과 그에 의한 생성’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건축가가 이 모든 규칙을 세우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가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야 사용하기 편할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결정을 내릴 때에 같은 사람으로써 전제하고 있는 경험과 규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암묵적이고 내제된 규칙이 발현된 것이 수치상 특이하고 이율배반적인 아홉칸 집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 단순히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간에서의 규칙을 생성하는 것, 그리고 내제된 규칙을 발현시키는 것 또한 설계의 한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몬테카를로 추출 (Monte Carlo Sampling): 4천조 개의 경우를 모두 전수 조사하는 대신, 특정 개방율 확률 분포하에서 각 구간별로 무작위로 추출한 100개의 표본은 전체 공간 중에서 특정 편향 없이 무작위로 골고루 분포된 대표값을 정확히 추출해 낸다. 방대한 경우의 수가 존재할 때, 거시적인 경향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통계학의 대수의 법칙 및 중심극한정리에 따라, 표본 크기가 구간당 30~50개를 넘어서면 평균 수치가 정규분포에 수렴하면서 전체 집단의 실제 평균값과 오차가 극도로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