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칸 집은 경기도 광주시 노곡리에 위치한 주택으로,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인 낮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아파트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던 건축주는 고즈넉한 일상과 자연의 소리를 찾아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노곡리에 여러 번 가본 만큼 자연스레 이 사이트에 먼저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이 주택이 자연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집의 중심부에는 천장에 둥근 천창이 있고, 나머지 8개 방들도 모두 한 개 이상의 큰 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택에서는 여러 자연 요소들 중 빛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축주 가족은 천창의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각 방 외벽에 한 개 이상의 큰 창이 나있는 점, 그리고 긴 처마까지도 모두 빛을 위한 설계 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긴 처마는 강한 햇빛을 걸러주어 커튼이나 블라인드 없이도 집에서 빛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끔 해준다.
이 주택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아홉 개의 칸으로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아홉 칸들은 모두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설계되었고, 사용자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서 그 쓰임새가 결정되는 가능성으로 가득찬 공간이다. 나는 이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빛과 아홉 칸을 활용해 추상화 과정을 시작했다.
우선 아홉 칸의 모듈 형태에서 각 면에 개구부를 뚫고, 모듈을 실제 주택의 방위와 동일하게 설정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빛의 흔적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대해 관찰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24절기에 따른 빛의 변화도 관찰해 보았다. 이러한 스터디를 통해 빛의 흔적이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에는 자연적 요소들에 따라서가 아닌 내가 임의로 설정한 빛에 의해서도 빛의 그리드가 형성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위, 아래, 왼쪽, 오른쪽에 광원을 하나씩 위치시키고, 모듈의 방위는 실제 주택과 동일하게 설정했다. 이때 그리드를 형성하는 빛들 중에서도 중요한 빛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빨간색 개구부를 지나는 빛들이 그리드 형성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빨간색 부분은 항상 열어둔 채로 추상화를 진행했다. 나머지 개구부들을 네 가지 케이스로 분류하고, 이 네 가지 개구부를 막거나 개방함으로써 만들어진 15개의 경우의 수에 대해 탐구했다.
최종적으로 동일하게 일정한 경향성을 가지는 빛의 흔적들이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아홉칸 집의 공간 자체는 아홉 칸의 모듈로 인해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경향성을 보이는 빛의 흔적들은 아홉 칸 외의 또 하나의 그리드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의도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설계되어 가능성으로 가득찼던 아홉 개의 공간들은 빛에 의해 생기는 또 하나의 그리드에 의해 다시 나누어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가능성의 공간들이 형성된다. 즉 주택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던 빛은 이 주택의 평면 구성의 핵심적인 개념을 극대화시키며 빛의 그리드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