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엔 여러 맥락이 있다. 사이트는 그 맥락의 교차점이었다. 위치, 목적, 건물의 프로그램, 공공성, 입면의 형태까지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지니는 사이트 일대의 맥락은 그 교차점인 사이트로 수렴하며 일종의 스트레스로 귀결된다. 각자 다른 맥락으로부터 사이트 일대로 걸어들어온 이들은 서로에게 몰이해의 자세로 날카롭게 교차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빠르게 지나치며 갈 길 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서촌은 여러 맥락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사람 사는 공간과 대형 건물, 한옥에다 갤러리까지, 다양한 맥락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서촌의 정체성이라고 본다. 그 공간 속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맥락만을 좇는다면 서촌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교차점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방해물이 아닌 공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부드러운 곡선같은 공간이다.
자연광은 사이트에 유독 진하게 비쳤다. 선례조사 대상이었던 르코르뷔지에관이 떠올랐다. 자연광을 활용하여 공간의 위계를 구분하는데 썼던 걸 떠올려보며 이번 설계에선 자연광을 더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해보고자 했다.
프로그램은 조소 갤러리다. 다소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조소 작품을 매개로 작업자와 관람자, 두 그룹이 서로를 서서히 이해하는 과정을 연출하고 싶었다. 이 갤러리에 유입되는 사람은 관람자가, 이 갤러리에서 작업하는 사람은 작업자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이 서촌에 부족했던 이해의 자세를 상기시켜주는 '이해의 장치'로 활용되길 원했다.
우선 행인들이 갤러리 내부로 자연스레 유입되도록 대지 안쪽으로는 각진 직선을, 보행로쪽으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매스를 내었다. 또한 다소 복잡한 사이트 일대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바깥으론 닫혀있는 중정형 매스를 두어 사용자들이 내부의 상호작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설계의 핵심은 관람자와 작업자 간의 상호작용이었다. 먼저, 이들이 서로를 공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와 작업자는 계단 사이의 창, 넓게 뚫린 창, 상부 오픈 등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관람자는 작업자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작업자는 관람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자세를 바라보며 서로에 대해 얼핏 알고만 있었던 단계에서 이해의 단계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방해요소로 여기지 않게 하려면, 함께하는 공간에서 결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활발한 공간은 활발하게, 조용한 공간은 조용하게, 공간의 성격을 구분하게 그에 알맞는 프로그램을 관람자와 작업자 모두에게 할당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광을 적극 반영했다. 갤러리는 크게 1. 접하는 공간 2. 집중하는 공간 3. 함께하는 공간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간들은 자연광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데, 접하는 공간은 그 주변의 높이 솟은 매스로 인해 반사광 위주의 잔잔한 빛을, 집중하는 공간은 슬릿과 천창으로 들어오는 좁고 강렬한 빛을, 함께하는 공간은 넓게 뚫린 커튼월로 들어오는 직사광, 환한 빛으로 각 공간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각각의 분류에 속한 개별의 공간들은 모두 직접으로 연결되어있진 않지만, 같은 자연광을 받으며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서로에 대한 필요 이상의 간섭을 방지하기 위해 작업자와 관람자의 수직동선을 구분하였다. 그러나, 중심부의 특수작업실 위를 둘러싸며 설치된 관람자용 계단은 그 옆의 작업자용 계단과 실내작업실과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단절감이 아닌, 필요에 의한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또한 작업자와 관람자 모두가 함께 휴식을 취하는 3층 카페와 기록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은 하나로 통합되어 두 그룹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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