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공간은 단순히 사방이 벽으로 막힌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정의하는 ‘퍼스널 스페이스’는 고립과 단절을 통한 '닫힘'의 상태가 아니라,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외부 환경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열림’의 상태이다. 이 에세이에서는 배봉산숲도서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현장 답사, 1:50 도면 작도, 1:30 대형 공동 모형 제작, 그리고 실물 크기의 1:1 테이핑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추상적인 ‘열림’의 개념이 구체적인 건축적 언어(형태, 공간, 구조, 재료)로 어떻게 심화되었는지 그 과정을 얘기하고자 한다.
'열림'의 실체화는 배봉산숲도서관의 실제 물리적 환경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현장 답사에서 출발했다. 내가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것은 나무로 둘러싸인 인테리어가 아늑함과 따뜻함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숲에서 도서관 내부로 들어간 그 순간부터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초 이 도서관 자체가 숲의 사이트를 유지한 채 그 위에 세워졌기에 그 부분이 더욱 아쉬웠다.
이후 진행된 1:50 스케일의 도면 작도 과정은 기존의 1:30 축척 도면을 1:50 축척으로 옮겨 그리는 변환 작업이었다. 기존 도면의 선들을 내 손으로 직접 다시 작도하는 이 과제는, 나에게 "건축 도면은 공간의 무엇을 담고 무엇을 생략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가지게 해주었다. 축척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 스케일이 요구하는 정보의 밀도에 따라 공간을 철저히 재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면이 과감하게 생략하게 되는 것은 현장의 가변적인 비물질성, 그리고 축척의 축소로 인해 탈락하는 미시적 디테일들이다. 도면은 배봉산숲도서관 창가에 머물던 빛의 조도나 숲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촉감 같은 풍경을 담아내지 못한다. 더 나아가, 더 큰 스케일(1:30)에 표현되어 있던 부재의 아주 미세한 접합부 등은 1:50이라는 더 압축된 축척으로 넘어오면서 하나의 단순화된 선과 면으로 과감히 생략된다. 심지어 숲과 내부를 가로막아 단절감을 주었던 투명한 유리창의 물성마저 도면 위에서는 얇은 두 줄의 선으로 생략된다. 이러한 도면의 속성은 특히 배봉산숲도서관의 종단면도를 작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다가왔다. 처음에 작도했던 종단면도가 건축물의 역학적 스케일감과 선의 밀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작도에서는 이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본격적인 선을 긋기 전 '가선'들을 처음부터 여러 개 촘촘하게 치고 시작했다. 기준 가선들이 확실하게 잡히자 축척 변환 시 발생하던 오차가 줄어들며 도면의 치수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작도 속도 또한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었다.
스튜디오 구성원 11명이 함께 참여한 1:30 대형 공동 모형 제작은 2차원 도면을 3차원의 실체로 변환하는 축조의 과정이었다. 1:30이라는 스케일은 건물의 외형만을 흉내 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벽체와 콘크리트 구조의 뼈대를 세우고, 단열재를 커팅하여 접착한 후, 외벽의 벽돌을 새기는 역할을 맡았다. 폼보드와 우드락 등의 모형 재료를 직접 칼로 자르고 붙이고, 도면 상에서는 그저 몇 개의 선으로 겹쳐져 있던 콘크리트, 단열재, 치장재의 구분이 머릿속에서 구조화되었다. 구조를 지탱하는 콘크리트의 두께감, 그 사이에 숨겨진 단열재의 부피, 그리고 표면을 마감하는 벽돌 치장제의 유기적 관계를 느꼈다. 더 나아가 콘크리트 구조와 지붕이 어떻게 세워지며, 기둥 및 벽들과 어떻게 맞물려 연결되는지가 명확히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공동 시나리오에서는 팀원마다 개인 공간의 방향이 달랐기에, 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배경으로 '조선시대'이라는 설정을 도입했다. 공간을 크게 바꾸기보다 시간을 변형함으로써 한옥의 좌식 문화와 자연 중심의 공간 사용을 유도했고, 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과 머무르는 태도를 변화시켜 서로 다른 퍼스널 스페이스를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특히 배봉산숲도서관이 가진 높은 층고와 목재 구조, 서까래 천장은 조선시대의 공간감과 완벽히 부합했다. 기존에 내가 정의했던 '벽을 허무는 물리적 열림'의 퍼스널스페이스는, 조선시대의 문맥과 결합하며 "인간의 주체적인 행위가 곧 공간을 정의한다"는 확장된 개념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진화는 경계를 부수고 공간을 개척하는 '낭만 도사'라는 캐릭터로 구체화되었다. 키 178cm의 도사는 정형화된 서고의 예법을 거부한 채 지붕 용마루에 올라가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냈다.
참고 문헌:
1 Merleau-Ponty, M. (1945). Phenomenology of Perception. (류의근 역, 『지각의
현상학』, 문학과지성사, 2002)
2 김봉렬. (1999). 『한국 건축의 재발견 2』. 이상건축.
3 Norberg-Schulz, C. (1980). Genius Loci: Towards a Phenomenology of
Architecture. Rizz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