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형을 만들다
살면서 그렇게 막막한 팀플은 처음이었다. 11명이 함께 도서관 하나를 모형으로 제작하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우리 설계실은 지붕 팀, 벽체 팀, 가구 팀으로 나뉘어 각자 부분을 제작하고
마지막에 합치자는 나름 좋은 계획을 세웠으나, 서로간의 소통이 부족해서인지 자주
삐걱거렸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합치는 과정에서 가벽의 유무, 보의 길이, 지붕의 길이 등
사전에 조율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오차가 발생해 힘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소통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활동이였다.
나는 지붕 팀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에 사전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모든 것(보, 서까래,
벽돌, 가구, 개구부, 지붕 등)의 수치를 재고, 공간구조를 분석하여 어떻게 모형을 만들지
방향을 잡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가 벽체와 지붕의 경계선인 서까래 부분의 처리를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로 정확한 정보 없이 지붕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2D 도면은 절대 3D
건물의 정보를 모두 나타낼 수 없다. 그걸 모르고 우린 서까래가 실제로 보기엔 분명 한겹인데
도면에는 왜 2겹으로 표시되는지도 모른 채 모형을 급하게 만들었다. 사실은 알아보지 않으려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당연하게도 지붕을 완성하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다른
설계실 친구들이 알려주길; 내부 서까래와 치장용 서까래가 따로 존재한다는 가설을
전해들었다. 마음을 고쳐먹은 우리는 우선 기존의 서까래를 천장의 마감재와 비슷하게 1t
폼보드로 덮어씌우고, 그 자리 위에 그대로 다시 서까래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며 지붕을 다시
만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보와 서까래의 맞물림, 서까래와 지붕의 맞물림, 지붕 철골 마디
사이의 간격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지붕을 고치는 과정을 4번 정도 반복했다. 심지어 두
지붕의 높이차 사이에 존재하는 창틀은 도면이 잘못되어 직접 배봉산 도서관을 재방문하여
측정한 수치들을 보고 다시 더 정밀하게 제작했다. 확실히 직접 공간감을 느끼며 측정하였을 때
정확도가 높았던 것 같다.
모형을 만들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재료에 따라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뀐다는 것이다.
보통은 단색, 해봐야 나무까지 해서 두가지 색으로 모형을 구성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도서관의 미니어처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회색 포맥스를 구매하고 벽돌 하나하나를 흰색
색연필로 색칠하는 등 기존 도서관의 질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지붕도 처음에는 칼집을 내서
철골판과 유사한 느낌을 주려 했지만, 포맥스 칼질은 안정성이 떨어졌기에 검은색 색종이를
덧붙이고 그 위에 연필로 진하게 덧그리는 방법을 통해 지붕을 시각적으로 보완했다. 뿐만
아니라 가구를 맡은 친구들은 직접 물감과 붓으로 으로 나무 결을 표현해서 도서관 내부를
생생히 구현하였다. 아래는 모형 제작이 끝난 후 찍은 내부 사진이다.
2. Personal Space와 일대일 도면
우리는 모두 그 범위는 다를지언정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존재한다. 나의
personal space 정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배봉산 숲 도서관은 특히 이 공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해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10분 정도 숲속 사이를 걸어나가면
나오는 이 숲 도서관은 한옥의 중목구조 형태를 띄면서도 외부는 챠콜색의 벽돌과
철골지붕으로 마감한 도서관이였다. 특히 숲을 통유리를 통해서 바라보며 난색계열의 따뜻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처음 도서관에 들어섰을때, 도서관
분위기가 비교적으로 가볍고 탁 트인 느낌을 받았다. 사전 조사를 통해 알아보았던 중국의
국가도서관이나 여러 나라의 의회 도서관들은 엄중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반면,
배봉산 숲도서관은 같은 도서관일지라도 행동의 제한과 신경의 긴장감이 훨씬 완화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personal space는 공간과 주변 환경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겠다는 가설을 세웠다.
일대일 도면 활동에서 처음에 연기를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정말 막막했다. 시나리오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리 조원들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모두 심리적 안정, 휴식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짤 때 이걸 뒤틀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반전의 매개체로
고양이인 건공이를 설정했다.
아래 스케치는 우리가 설정한 단면도의 부분을 30:1 스케일로 그리고 그 안에 시나리오의 한
장면을 간단하게 그려넣은 것이다. 저 창틀 부분을 프레임으로 설정한 이유는 연출 때문이다.
우리는 건공이가 도서관에 침임하여 기존의 평화롭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다. 여기에서 창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도구이자, 대비시키는 벽이기도 하다. 원래
도서관 내부는 조용하고, 이용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좁은 personal space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건공이가 도서관 안에 등장함으로써 시각과 인지의 범위가 급격히
넓어지고, 누군가는 도망가기 위해, 누군가는 건공이를 쫒기 위해 넓은 personal space가
발현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밖은 도서관 내부보다는 더 무질서하고, 행동의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본래 넓은 personal space가 발현된다. 하지만 우리가 밖에 배치한 사람(나의 역할)은
이어폰을 착용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오히려 좁은 personal space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창이라는 소재를 통해 대비시키고자 하였고, 이를 더욱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레이어를 테이프의 두께로 분리하였다. 특히 레이어에 관해서는 교수님께서 선두께에 대해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셨기에 전면적으로 원활한 수정이 가능했다. 아래는 일대일 도면과
콜라주의 완성본이다.
막상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도면을 완성하고 나니, 사람의 personal space는 반드시 공간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같은 도서관 안에서도, 누군가는 창을 통해
넓은 숲을 바라보고 있지만, 누군가는 책장에서 책을 고르느라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밖에 위치해 있더라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personal space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을 PPT에 표현하고자 평면도에 개개인의 personal
space를 시각화하여 나타내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상황에 따라 개개인의 personal space가 변화하는 것을 직접 표현하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로써 나는 personal space가 공간과 주변환경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
지닌 사물 등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