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도서관’이 배봉산 숲 속 도서관의 첫인상이었다. 어린이 전용 도서실, 건물 외부와 연결된 카페, 도서관 바로 옆 놀이터. 조용한 몰입의 공간인 도서관이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열람실과 어린이 전용 도서관의 분리, 창문과 벽의 방음같이 구조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람들의 행동이 눈에 띄었다. 서가 사이 좁은 길목에서 지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뛰어다니는 아이를 자제시키는 부모, 의자를 들어 조용히 넣는 사람, 조용히 책을 넘기는 사람 등. 타인의 배려가 모여 한 명의 퍼스널 스페이스, 그리고 ‘분주한 도서관’이 성립할 수 있었다.
퍼스널 스페이스는 타인의 배려가 전제된다. 반대로 퍼블릭 스페이스는 개인의 우연한 만남이 전제된다. 퍼블릭 스페이스라는 공공 공간은 퍼스널 스페이스를 가진 개인이 기꺼이 경계를 완화하고, 타인과 우연한 만남을 허용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다. 타인의 존재가 없이는 또 개인의 존재가 없다면, 퍼스널 스페이스와 퍼블릭 스페이스는 아무 의미 없는 스페이스일 뿐이다. 타인이 없다면 개인의 공간은 한계 없이 무한히 확장하고, 개인이 없다면 공공의 공간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타인 없이 개인의 공간은 없고 개인 없이 공공의 공간은 없다.
즉 퍼스널 스페이스와 퍼블릭 스페이스는 각각 타인과 개인이 전제된 영역이고, 타인과 개인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퍼스널 스페이스와 퍼블릭 스페이스를 정반대의 개념으로 보기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개념으로 보려 한다. 타인이 개인에게 미치는 긴밀한 영향(이 공간에 어느 타인이 있는지, 타인이 얼마나 있는지, 타인이 무얼 하고 있는지에 따라 변하는 퍼스널 스페이스의 경계)과 개인이 타인에게 미치는 긴밀한 영향(이 공간에서 개인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퍼스널 스페이스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변하는 퍼블릭 스페이스의 성격과 분위기)이 있다. 개인과 타인 사이 긴장과 이완이 퍼스널 스페이스의
경계, 퍼블릭 스페이스의 성격을 정한다고 생각한다.
퍼스널 스페이스는 환상이다. 타인이 끼친 영향이 나를 긴장하고 이완시켜 퍼스널 스페이스의 경계를 결정짓게 하는 것, 퍼블릭 스페이스의 성격에 따라 퍼스널 스페이스의 성격 또한 결정된다. 퍼스널 스페이스의 진정한 시작점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그래서 단어 그대로의 퍼스널 스페이스(자신이 결정 짓고 정의하는 자신의 영역과 경계)는 환상이고, 실제로는 수많은 타인의 영향이 모여 퍼블릭 스페이스 위에 만들어지는 일종의 유휴지라 생각한다.
수많은 레이어의 선과 0.1mm로도 가늠이 어려운 부재의 중요성을 느꼈다. 입면, 단면, 평면을 그리며 보인 샤프심보다 작은 크기의 선과 부재는 실제 건물에서도 도면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기 어려워 뭉개지고 표현하지 못한 부재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영향과 배려가 모여 퍼스널 스페이스가 되듯 놓친 부재들도 모여 건물이 된다는 점이 같게 느껴졌다. 0.1mm보다 작은 수치를 가늠하며 치수대로 그리기 보다, 작은 부재의 존재를 인지하며, 생략하지 않고 분명히 그리는 태도가 중요하다 느꼈다. 생략한 부재는 평면도부터 다시 그리고 있다.
바닥-벽-지붕을 세우며 스케일은 작아도 물리적인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어려움을 체감했다. 특히 벽의 맨 위 나무 틀-서까래-지붕-나무 기둥을 하나의 통합체로 모형을 제작했다. 수십개의 서까래를 일정한 간격으로 붙힌 후, 짧은 서까래와 긴 서까래 사이를 나무와 우드락으로 매꾸어 본드를 쓰지 않아도 부재의 힘만으로 지탱하도록 제작했다. 이때 나무에 비해 탄성이 좋은 우드락을 지붕판으로 쓰고 또한 서까래 사이에 삽입하니 지붕 옆 면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띄었다. 부재의 인장력으로 한옥의 처마처럼 휘어 부재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재희’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도서관 속 시나리오와 1:1 단면도를 제작했다. 한 인물의 시간에 따른 행동 변화를 각각 한 명의 페르소나로 설정했다. 팀원이 모여 가상의 인물을 창조, 이야기 제작한 점이 타인이 만든 환상의 퍼스널 스페이스인 것과 비슷하다 느꼈다.
팀원이 한 데 모여 가상의 이야기, 인물, 공간(모형), 픽션(도면)을 제작했다. 모두가 균등히 일하지 못했을 것이고, 모두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못했을거라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팀원의 작은 행동이 모여 우리의 작업이 완성되었다. 각자의 배려가 모여 가상의 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