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작성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가장 먼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바로 생각하며 그리기였다. 주어진 축척을 단순히 옮겨 적는 식의 작업은 자칫 기계적인 따라 그리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도면의 어느 부분을 작업하고 있는지, 어떤 재료를 표현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작업에 임했다. 도면을 그릴 때 편의성에 따라 영역별로 채워나가는 대신 외벽이나 창호 등 구조적 요소별로 묶어서 차례대로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소를 통일하여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면 전체의 구조를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로, 도면 속 선들의 역할과 쓰임새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했다. 도면을 이토록 자세히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건물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그려진 도면이 내게는 한눈에 읽히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각 선이 가진 의미를 명확히 알아야 도면이라는 언어를 비로소 독해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도면을 그리며 선의 의미 and 표현 방식을 끊임없이 탐구했고, 실제 작도 과정에서도 선의 위계와 모양을 정확하게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선을 긋는 행위를 넘어, 도서관의 중심축과 동선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손으로 직접 구현해 보면서 눈으로만 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도서관의 평면적·입체적 구조를 깊이 있게 체득할 수 있었다
손끝으로 익힌 도면의 언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인 1:30 도서관 모형 제작에 착수했다. 이는 내 머릿속과 종이 위의 건축적 선들을 하나의 정교한 입체적 세계로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공동 작업에서 나는 서까래를 하나하나 직접 자르고 붙여 구조적 형태를 완성하는 지붕 제작을 전담했으며, 도서관의 정체성이자 공간의 구획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책장 제작, 그리고 전체적인 실루엣을 잡는 외벽 제작을 주도했다. 2차원의 도면이 내 손끝을 거쳐 3차원의 실체로 변환되는 과정은 경이로웠지만, 동시에 정교한 디테일의 한계를 마주한 과정이기도 했다.
지붕과 벽체가 깔끔하게 분리되도록 서까래 간격에 맞춰 벽체에 홈을 파는 실험적인 시도를 지향했으나, 완성 후 결합과 분리가 매끄럽지 못해 시각적인 완성도가 다소 저하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공들여 만든 책장과 내·외벽의 두께 차이, 창틀 등의 미시적인 디테일을 온전히 살리지 못했고, 재료 본연의 색감 구분을 주지 못해 도서관 내부 공간의 깊이감이 다소 반감되었다. 그러나 도면상에서는 완벽해 보이는 선과 홈이 실제 물리적 세계에서는 오차와 마찰력으로 인해 다르게 작용한다는 것을 배우며, 건축 설계 시 시공성과 재료의 물성을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이러한 모형 제작을 통한 정량적 실측과 구조적 고찰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머무는 인간의 영역에 대한 깊은 탐구로 이어졌다.
모형을 만들며 체득한 공간감은 자연스럽게 그 속을 채우는 인간의 영역인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정의로 확장되었다. 내가 정의한 퍼스널 스페이스는 내가 지금 이 순간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을 기본으로 하되, 특정 행위를 할 때 확장되는 공간까지를 포함한다. 더 나아가 내가 직접 행동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는 내 동선의 최대 가동범위야말로 한 사람의 진정한 퍼스널 스페이스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러한 나만의 정의는 배봉산도서관을 총 다섯 번 답사하며 확립되었다. 공간의 구성과 치수를 실측한 초기 방문을 지나, 그 공간 안에서 4시간 정도 내 방식대로 직접 시간을 보낸 세 번째와 네 번째 방문을 통해 인식이 확고해졌다. 나는 평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다이어리를 쓰기도 한다. 한 자리에 앉으면 거의 움직이지 않고 목표한 시간을 온전히 채우고 일어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오랜 시간 머무른 그 물리적인 좌석을 중심으로 나만의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록 내 몸은 고정되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정적인 몰입 속에서 퍼스널 스페이스의 진정한 경계가 느껴졌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늠했던 반경은 이 공간만큼은 타인에게 침범당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최소한의 심리적 안전 구역이었다. 도서관이라는 사방이 열린 공적 공간 속에서도 온전한 안도감을 유지하며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무형의 방어선 덕분이었다.
1:30 모형을 만들며 느꼈던 디테일의 아쉬움과 답사를 통해 내린 퍼스널 스페이스의 정의를 바탕으로, 최종 단계인 1:1 드로잉 프로젝트에서 이를 실제 크기로 확장하여 실험하고자 했다. 축소된 모형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실제 스케일에서 타인과 어떻게 충돌하고 연결되는지 가시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 조는 이를 위해 '골드버그 장치'에서 영감을 얻어, 배봉산도서관이라는 공유 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퍼스널 스페이스의 침범과 확장을 하나의 연쇄적인 시나리오로 구성했다. 내가 공부하며 몰입하던 정적인 자리가 나의 안전 구역이었다면, 이 드로잉 속에서는 아이의 높은 활동성이나 예기치 못하게 넘어진 물병처럼 외부의 변수들이 등장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정의했던 심리적 방어선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영역이 타인의 행위와 상황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재구성되는지를 1:1 스케일의 압도적인 크기로 증명해보고 싶었다.
단순한 2차원 도면을 넘어 공간의 깊이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단면 투시도를 선택한 이유도 퍼스널 스페이스의 침범이 공간 전체의 흐름을 깨뜨리는 역동적인 사건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특히 검은색 테이프로 정교하게 구축한 도서관의 서까래와 기둥 위로, 주황색 테이프를 사용해 인물들의 행위를 묘사했다. 이는 정적인 건축 공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간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시각적으로 분리하여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실제 1:1 스케일로 테이핑 작업을 진행하며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공간의 실재감이었다. 1:12 시안을 실제 크기로 옮기는 과정에서 천이 늘어나거나 치수의 시작점이 어긋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도면 위의 선 하나가 실제 공간에서는 얼마나 거대한 물리적 힘을 갖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인물들을 주황색 선으로 그려 넣으며, 내가 정의했던 무의식적 가동범위가 타인에게는 예기치 못한 침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목격했다. 음악 소리를 키워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려는 인물과 소란스러운 상황 아래서도 지붕 위에서 평화로운 안도감을 유지하는 인물의 대조를 통해 퍼스널 스페이스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는 살아있는 영역임을 깨달았다. 결국 좋은 건축이란, 개인이 침범당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그 심리적 안전 구역을 공공의 장소 안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게 되었다. 손도면 작도부터 1:30 모형, 그리고 1:1 드로잉에 이르기까지의 이 치열한 여정은 추상적인 이론을 넘어 실재하는 공간의 무게감을 체득하게 한, 내 건축 학습의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
에드워드 홀 (Edward T. Hall), 『숨겨진 차원 (The Hidden Dimension)』, 최효재 역, 문학과지성사, 1985.
이현웅·김미영, 「공공도서관 이용자의 행태에 따른 개인공간(Personal Space) 영역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제28권 제11호, 2012, pp. 115-122
요하니 팔라스마 (Juhani Pallasmaa), 『건축과 감각 (The Eyes of the Skin)』, 김훈 역, 시공문화사,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