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1 최종 발표를 마치고 남은 의문은 하나였다. "우리는 지금 주제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튜디오의 많은 결과물들이 사물을 얼마나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는지, 혹은 원래의 사물을 변형하여 얼마나 새롭고 창의적인 오브제를 만들어내는지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이 과제의 본질일까?
황동욱 교수님께서 던지신 "공간"이라는 해답 없는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나는 감각적인 디자인이나 그림 실력을 뽐내는 것을 배제했다. 대신 '손과 사물이 맺는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아주 건조하고 물리적인 분석을 통해 나만의 공간을 정립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물이 지닌 특성을 나의 손이 어떻게 작용하여 발현시키는가에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세 가지의 명확한 조건을 설정했다.
1. 절대적인 거리와 실측
사물을 단지 '누른다'는 기능을 넘어, 내 신체와 사물 사이의 '절대적인 거리감'을 인지하기 위해 1:1 실측 스케일을 고집했다. 사물의 복제가 아닌, 나와 사물이 맺는 1mm의 오차도 없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2. 힘의 전달 경로 해체
손끝의 힘이 사물로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표면적 행위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내부의 틈과 텐션을 이해하기 위해, 사물을 직접 몸으로 자르고 드라이버로 분리하여 층위를 해체했다. 이는 힘이 전달되는 경로를 세세하게 분석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포토샵을 이용하여 모션 드로잉을 하였다.
우리는 단순히 기능을 탐구하기 위해 1달이라는 긴 기간동안 한가지 사물을 탐구한 것이 아니다. 모션 드로잉을 통해서 사물을 기능이 아닌 공간 경험으로 재인식하였다.
3. 형태를 결정짓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사람들에게 '스톱워치'를 그려보라고 하면 결코 모두가 똑같은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트랙 위에서 손아귀 전체로 꽉 쥐는 육상용 스톱워치를, 누군가는 주방 벽면에 부착된 타이머를, 그리고 누군가는 책상 위에 두고 손바닥으로 누르는 책상용 스톱워치를 떠올린다.
동일한 '시간 측정'이라는 기능을 수행함에도 사물의 형태가 이토록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물이 놓이는 '환경', 그것을 다루는 '나(신체)',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행위'의 상호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제기한 '환경에 따른 상호작용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세 가지 다른 환경에서의 스톱워치 사용 방식을 동일한 1:15 스케일의 실측도로 도면화했다. 이는 단순히 상황을 묘사한 스케치가 아니다. 시야각, 신체의 관절 높이, 사물과의 거리를 mm 단위로 계산하여 공간의 제약이 어떻게 인간의 행위를 바꾸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책상 위 : 가장 중요하게 파고든 나의 실제 환경이다. 완전 몰입 상태(모의고사 시험지 기준 42도 시야각)에서, 펜을 내려놓고 스톱워치를 누르는 순간(50도 시야각, 팔의 뻗음 600mm)은 섬세함을 요구한다. 납작하고 넓은 버튼은 빠르게 손바닥으로 치기 위함이다. 이것이 환경의 영향이다.
육상 트랙 : 끊임없이 자세가 변하고 질주하는 신체(60~70도의 시야각) 속에서 사물을 다뤄야 한다. 찰나의 순간에도 기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므로, 예민한 틈보다는 손아귀 전체로 강하게 움켜쥘 수 있는 둥글고 견고한 입체적 형태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이 환경의 영향이다.
주방의 벽면 : 우리는 요리할 때 당연히 아래를 응시하게 되고 당연히 서있는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아래를 응시한다고 해서 스톱워치를 아래에 배치하게 된다면? 온갖 이물질들이 스톱워치에 묻어 관찰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환경의 영향이다.
이 세 장의 1:15 실측 도면은 결국 "사물의 형태는 디자이너의 맹목적인 직관이 아니라, 그것이 놓인 공간의 물리적 거리와 신체의 한계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물증이다. 나는 형태를 새롭게 '창조'하는 대신, 이 절대적인 치수와 궤적들을 통해 내 책상 위 스톱워치가 왜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 완성에는 나만의 맞춤완성 스톱워치를 디자인하였다. 내 신체를 치수화하고 내가 사용하는 사물을 치수화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