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가의 집은 경성제국대학교(현 서울대학교)의 본부로 1930년대에 처음 지어졌다. 동숭동 일대는 당시 논과 밭으로 된 넓은 '공터'로, 대학 캠퍼스를 위한 최고의 입지였다. 비어져 있는 땅에서 맥락은 없었다. 이에 따라 경성 제국 대학은 고전적 방법인 축을 형성함으로써 맥락을 창조했다. 이는 '공공성'이라는 도시와 건축적 어휘에 있어서, 공공성은 어디까지나 캠퍼스의 명시적 일원(학생과 교수 등)에게만 해당됐음을 이야기한다.
2. 서울대학교가 관악으로 이전하고 과거 캠퍼스였던 그 일대는 문화지구로 모두에게 개방될 예정이었다. 이는 김수근의 의견이었다. 해당 부지는 김수근이 설계한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이 가장 먼저 자리 잡았다. 모두에게 개방되는 공공적 공간이 됨에 따라, 김수근은 이 두 건물에서 사람들이 공간을 점유하는 요소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예술극장과 미술관 외부에 놓인 계단과 기단 등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성공적으로 개발을 마친 이 일대는 소극장이 중심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극 예술은 본질적으로 관객이 극에 참여하고 관객과 배우 모두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사람들 간 공통의 정서를 교류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참여는 건물 내부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 공간에서도 이러한 행위가 발생되도록 하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으며, 이러한 요구는 '차 없는 거리' 사업을 통해 반영된다.
4. 이러한 외부 공간에서의 참여적 행태에 대한 요구는 상징적 이미지에 갇혀 있던 공원의 리모델링을 촉구했다. 이제 공원은 녹지가 축소되고, 공연장이 마련됨으로써 개개인이 공공적 행태에 참여하고자 하는 요구를 반영하게 됐다.
5. 이 일대 행태의 순서. 극장 매표소에서 티켓을 발권하거나, 연극 공연(1번)을 보고난 후 사람들은 공공 공간에서 공간을 점유(2번)하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공연등의 이벤트(3번)가 발생하게 된다.
6. 외부 공공 공간에서의 행태는 날씨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동 하는 사람들] :걸으며 대학로 문화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게 된다. 비가 온다면 상업 시설을 방문하는 등 이동을 멈추게 된다.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 : 더운날,건물 주변이 아닌 나무 주변에서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 비가 온다면 실내에서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 [개인 참여적 이벤트] : 버스킹과 마술 공연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는 더운날, 사람들이 공간을 많이 점유하고 있는 공원 일대에서 발생한다.
7. 시기에 따른 행태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초기 대학 캠퍼스 시절의 공공성은 학생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그 공공성은 행태를 불러오는 형태가 아닌 고전의 상징적 이미지만을 통해 드러난다. 문화 지구로 개발되기 시작할 즈음에는 공공 공간을 누구나 점유할 수 있는 형태가 나타나며, 현대에는 개개인이 극 예술에 참여하듯 외부 공간에서도 이러한 형태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의 형태가 발생한다.
8. 이러한 공공성에 대한 시대의 변화를 예술가의 집은 어떻게 반영했을까? 처음 지어졌을 당시, 예술가의 집은 오피스 프로그램이 중심이 된 건물이었다. 고전적 형태를 통해 대학 본부로서의 공공 건물임을 상징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미지를 통한 상징이었을 뿐, 공공적 행태는 가져오지 못했다.
9. 문예진흥원의 건물로 사용되던 시기, 오피스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3층 동측 부분을 증축하고, 실을 구획하는 내벽을 더 늘림으로써 더 많은 오피스를 확보했다. 주변 일대가 문화 지구가 됨에 따라 'Artist Lounge' 프로그램이 생기며 주변 일대의 요구를 반영했다.
10. 앞서 주변 일대를 확인한 바와 같이, 사람들이 공공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예술가의 집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프로그램이 많이 추가 되며, 넓은 공간 확보를 위해 내벽을 철거했다. 그러나 지난 변화 속에서도 고정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형태다.
11. 건물의 형태는 고정되고 입구로 좁은 틈만을 내어주며 공원과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즉 사람들의 공공적 행태를 끌어내 줄 형태 제공 보다는 내부 벽과 실, 프로그램의 변화만을 겪으며 처음 지어진 대로 상징적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다.
12. 이러한 고전적 이미지는 명확히 서구의 것이다. 새로운 양식을 향해 나아가던 시기에 공공 건축의 기념비성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유효했다. 당시 공공 건물은 고전적 양식을 따름으로써 기념비성을 얻고자 하던 움직임이 있었다. 1930년대, 합리주의적 정신에 입각한 근대 건축이 이미 성숙기에 달했던 시기이지만, 일본과 식민지에서는 고전적 형태를 통해 공공적 정신을 반영하고 있었다.
13. 예술가의 집은 명확히 로마네스크적이며 고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그러한 엄격함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근대적 실용성이 형태에 있어 반영된 것이다. 교통과 프로그램의 요구에 따름이다. 차고를 배치하기 위해 건물의 중심성을 보여주는 포치가 중심에서 동측으로 이동됐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따라 '매스'가 추가되듯 건물에 덧붙여진다.
14. 지난 세월 동안 건물에는 많은 내벽의 위치가 변화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가의 집은 기본적으로 조적벽 구조와 보가 함께 사용됐으며, 차고 공간 등에서는 스팬을 확보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사용되었다. 남측과 북측의 조적벽에 걸린 보가 예술가의 집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조이다. 이를 통해 내벽은 남측과 북측의 외벽 사이의 보를 부분적으로 지탱해주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내벽은 프로그램의 요구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철거되고 새로 지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15. 김승유. 사례 조사
16. 김승유. 컨셉
17. 김형래. 케이스 스터디
18. 김형래. 컨셉.
19. 김호진. 케이스 스터디
20. 김호진. 컨셉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김호진의 저작물인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uosarch.ac.kr., Some rights reserved.
고장 및 불편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