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공간은 손과 사물, 공간의 관계를 함축한다. 관찰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익숙한 사물의 기능, 형상, 움직임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하였으며 이 과정을 통해 공간적인 해석으로 표현을 확장할 수 있었다. 나는 Handful Object라는 Phase1의 제목에 걸맞게 손과 가장 자주 닿고 가장 익숙한 애플워치를 선택했다.
사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애플워치를 의식하게 된 것은 여타 손목시계들과는 다른 스트랩 경첩의 작동 원리였다. 위 스케치를 보면 애플워치를 기능적으로 해석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한 스케치들이 대다수이다. 초반 모형도 스트랩 경첩의 작동 원리에 집중하기 위해 비교적 세세한 다른 부분들은 생략하였다.
객관적인 관찰의 태도에만 의존하여 나의 기존 스케치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경첩이 움직이고 스트랩을 착용하는 과정을 떠나 손과의 관계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스토리보드에 나의 생각을 담고 1:1 실측 모형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처음 애플워치에 집중한 이유이자 주된 스토리보드의 흐름이었던 '스트랩의 작동 원리'가 건축설계기초1의 수업 목표인 '새롭게 발견하기'와 Handful Object의 키워드인 '재인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물만을 스케치하기보다는 사물과 어우러진 손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관찰의 태도를 시도해보며 애플워치를 착용한 손목 단면을 그려보며 다양한 드로잉에 시간을 들였다.
애플워치를 착용한 모습에 그치지 않고 손끝에 화면이 닿는 모습, 스트랩이 둥글게 말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부 경첩의 모습을 한 장의 그림에 같이 그려보며 사물과 손,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미 애플워치를 착용한 모습을 관찰한 후, 나는 평소 신경쓰지 않았던 '애플워치의 탈착 과정'을 새롭게 다뤄보고 싶었다. 애플워치를 착용하는 과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스케치했고 생각해본 적 없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스트랩이 손목을 통과하는 과정은 단편적인 스케치로만 담아내기에 무리가 있다. 1:1 실측 모형을 직접 착용할 수 있게 제작하고 착용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이후 레이어를 여러 장 겹쳐 손목을 통과하는 스트랩의 모습을 생생하고 한눈에 보이도록 표현했다.
1:! 실측 모형을 제작하고 난 후 과연 스트랩이 우리가 아는 사이즈의 수백배 커진다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애플워치 스트랩을 손목이 통과하는 것처럼, 수백배 커진 스트랩을 아치 모양으로 세워 하나의 '통로'이자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거대해진 스트랩 속으로는 사람이 터널을 지나듯 자연스레 통과할 수도 있고, 애플워치가 근본적으로 다루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주 큰 스트랩이 만들어내 공간 전체를 채울 수도 있다.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을 끝마치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 스트랩이 만들 수 있는 또다른 공간들을 탐색했다. 애플워치 스트랩의 구조는 일반적인 신체 곡률에 맞도록 둥글게 디자인된 손목시계들과는 다르다. 경첩을 통해 다양한 형태를 구상해볼 수 있다. 스트랩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고 돌리고 뒤집어가며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구조는 경첩을 굽히면 관찰할 수 있는 '시옷' 모양의 구조이다. 신체 곡률에 맞도록 둥글게만 디자인했다면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양이다.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 이 모양을 1:1 실측 모형에서 가져와 여러 개를 합쳐보았다. 공간을 찾다가 발견한 아이디어로 유기적인 패턴을 만든 것이다.
경첩이 달린 스트랩은 감히 시계줄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만큼 광범위한 형상을 이룰 수 있었다.
모형 제작 의도가 스트랩의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보고 구상하기 위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초반의 관찰 태도는 오로지 작동 원리에 집중했기 때문에 경첩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여 착용이 가능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사물을 기능이 아닌 공간의 경험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익혔다. 그 태도를 통해 익숙했던 사물에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생각을 폭넓게 확장해 직접 모형과 스케치로 표현했다. 손과 공간, 사물 간의 관계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었고 손 뿐만 아니라 인체로 그 관계를 확장해나가는 다음 프로젝트에 이번 경험이 단단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