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리스 건축의 아홉칸집은 3*3 격자에 따라 구성된 집이다. 격자 구조는 균등한 칸들의 반복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경험되는 공간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아홉 개의 칸은 벽으로 단절된 독립된 방이 아니라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벽이 생략된 부분을 통해 방과 방은 이어지며, 내부 동선은 하나의 흐름이 된다.
중앙 칸의 천장에는 원형의 천창이 뚫려 있는데 이 천창을 통해 빛, 비, 바람 등이 직접 들어오며, 내부에 있으면서도 외부와 연결되는 경험이 발생한다. 이 점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아홉칸집의 격자에서 칸 하나를 추출하고, 바닥과 지붕을 제거하여 네 개의 벽만 남겼다. 이는 칸을 방이 아닌 경계의 최소 단위로 환원하는 과정이었다. 이 단위를 네 개 연결하고 중앙을 빈 공간으로 남김으로써, 가운데는 외부로 설정되고 네 개의 칸은 내부로 서로 이어져 흐름을 갖는 구조를 보여준다. 패턴을 반복, 확장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관계는 점차 뒤섞여서 외부는 내부처럼 내부는 외부의 일부처럼 인식이 된다.
드로잉에서는 내부와 외부를 분리해 각각의 영역을 색으로 표시하고 방과 방 사이의 이동 경로도 표시하였다. 마지막에 세 장을 함께 겹쳐보면 공간이 내부, 외부, 이동이 중첩된 연속체처럼 보인다.
폼보드 모형은 개념을 잘 보여주지만 가벼워서 물리적인 표현이 좀 부족해보였다. 그래서 이 모형을 틀로 삼아 시멘트를 부었다. 방이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외부였던 빈자리가 덩어리 속 구멍으로 남아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뒤집힌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빈 공간들이 서로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아홉칸집은 형식적으로는 격자 구조를 따르지만, 경험적으로는 방과 방의 연결성과 내부, 외부 경계의 모호성을 통해 공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이번 추상화 작업에서 방을 최소 단위로 환원하고, 연결과 비움을 확장하며, 모형을 만듦으로써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그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