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에 관한 짧은 글
풍년빌라스러움
한 건물 안, 세 가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풍년빌라는 한 건물 안, 세 가구의 매스가 입체적으로 포개어진 형태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한 매스가 다른 매스를 삼켜버리거나, 반대로 완전히 분리되어 단절되기 쉽다. 풍년빌라는 그 사이에서 다른 방식을 택한다. 서로를 삼키지 않고, 겹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세 개의 매스는 수직 코어를 중심으로 퍼즐처럼 겹쳐진다. 수직 코어가 겹침을 조직하는 축이 되면서, 매스들 사이에 ‘회색 지대’가 만들어진다. 이 회색지대는 벽이나 면으로 잘라낸 경계가 아닌 볼륨 경계로 작동한다. 특정 세대에 속하면서도 필요할 때 열려 공유될 수 있는 선택적 공유 공간인 것이다.
풍년 빌라의 특성은 바로 이 회색 지대를 통해 공용과 보장된 사적이 동시에 가능해진다는 데 있다. 문을 열어야만 연결이 이루어지고, 닫으면 곧바로 사적인 생활로 돌아간다. 이것은 겹침이라는 방식을 통해 분리와 삼킴을 넘어서는 또 다른 해법인 것이다.
풍년빌라스러움은 결국 겹침이라는 공간 전략을 통해 경계를 재정의하는 방식이다. 딱딱한 벽 대신 유연한 볼륨으로, 강제된 공유 대신 선택적 연결로. 이는 좁은 공간에서도 각자의 영역성과 관계의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건축적 해법이다.
사실 나의 과제1 전 과정이 아래의 '풍년빌라스러움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녹아 있다.
그렇기에, 위는 최종 과제물 / 그 아래에 나의 디벨롭 프로세스 식으로 아카이빙을 구성했다.
위가 최종 제작한 가이드라인이다.
가이드 라인은 실제 책자 형태로 3부 만들었고, a5 크기로 전체 인쇄하여 발표 및 전시에 활용했다.
(사실 말을 안 하면 모르는데, 맨 앞뒤를 보면 알 수 있듯 풍년빌라의 파사드를 기준으로 메뉴얼을 콜라쥬했다.)
위는 아이소 매트릭과 평면도 핸드 드로잉이다.
메뉴얼과 개념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내가 뽑은 풍년빌라스러움의 핵심은 회색지대인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입체와 평면, 두 가지의 방법을 택했다
최종 모델은 마치 풍년빌라에 x-ray를 찍은 것과 같이 만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풍년빌라의 핵심인 회색지대는 보이는 재료로 만들고
그 외의 풍년빌라 전체적인 매스를 아크릴로 만들어, 풍년빌라 속에서 회색지대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또한 풍년빌라는 3가구가 한 건물에 사는 형태이지만, 사실상 3개의 복층 주택이 입체적으로 결합된 형태이다.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 각 가구의 매스를 단순화하여 주변에 입체적으로 배치했다.
아래 사진은 전시 때의 사진이다.
가이드라인 책자 1부 + 최종 모델 + 아이소매트릭 핸드 드로잉 + 스터디 모델 + 가이드 라인 펼친 ver + 포스터 느낌으로 출력한 표지
구성이다
아카이브 문제로 세로 사진을 가로로 올린다
이 아래부터는 설계 프로세스와 디벨롭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사실 맨 처음, 풍년 빌라를 스터디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뭐가 어떻게 될지 감도 안 와서'
당연 다른 건축물도 깊게 파면 심오한 세계로 빠져들겠지만.. 뭔가 다들 방향성이 조금씩은 보였다.
하지만 풍년빌라는 처음 볼 때 그런 방향성이 조금도 안 느껴졌기에, 이 건물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여름방학 때 야마모토 리켄의 '탈주택'이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어서, 공동주거에 대해 고민하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풍년빌라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 공간에 대한 스터디로는 풍년빌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그게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점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했다.
공간적으로 풍년빌라는 굉장히 열악한 대지 속에 있다. 비슷한 레벨의 빌라 6채 속 갇혀있다. 심지어 대지는 자루형 대지이기에 공간활용조차도 쉽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공간에 대한 스터디를 벗어날수록 풍년빌라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도서와 건축 기사를 참고랬다
현대 '집'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가 말하는 중간주거, 탈출 전략, 공유가 아닌 공용..등
오히려 공간이 아니라 건축가가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공간에 대해 더 깊고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 대한 부분 스터디다.
외부인이 사용할 수 있는 변기, 세면대를 외부에 배치 / 사적인 샤워부스를 일부러 내부에 배치했다.
또한 다른 가구 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 2번의 꺾임이 있어야 사적인 공간에 도달할 수 있다.
도면에서 가구의 경계벽은 2겹인데, 한 가구에서의 가벽은 1겹인 것도 포인트다.
공부를 하며 '회색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사적인 공간 속에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곳'
'사적인 공간에 공적인 프로그램이 침투할 때, 공적으로 바뀌어 방어막이 될 수 있는 곳' 을 회색 공간이라 칭했다.
복도, 미팅룸, 거실.. 내가 생각하기에 회색 공간을 표시했다.
이 회색 공간을 통해 경계는 단순한 벽이나 문이 아니라, 볼륨으로 변한다.
풍년빌라를 공부하며 느낀 건, 공유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건축가는 역설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공유주거에 대해 '공유'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을 보장하고 공유를 자유롭게 택하게 한다는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사실 이런 점에서 메뉴얼을 만든 것이다. 이 가치가 너무 인상적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단순히 이해시키는 것을 넘어 이 가치를 실험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을 바랐다. 그렇기에 과제를 단순 드로잉이나 패널이 아닌 가이드 라인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