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개인이 깊이 몰입하고 사유할 수 있는 장소는 드물다.
이번에 제안한 공간 ‘빛을 따라 침잠하는 독서의 동굴’은 단순한 증축 이상의 개념을 담고자 한다.
외부로부터 물리적으로는 차단되어 있지만, 빛이라는 감각을 통해 시간과 하늘, 계절과 연결된다.
사용자는 묵직한 곡면 아래에 들어서며 점차 조용해지고, 천천히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게 된다.
이곳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감각의 울림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전체적인 형상은 원기둥을 1/4로 자른 곡면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곡면은 지붕 위에 얹히듯 배치되어 바깥 세계와 시각적으로는 분리되며, 내부적으로는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는 중력감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
두껍고 묵직한 벽체는 시선을 내부로 끌어당기며, 곡면으로 하늘을 향해 열린 상부는 감정을 가라앉히는 공간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공간은 완전히 닫힌 동굴은 아니다.
오히려 이라는 요소를 통해 절제된 방식으로 외부와 연결된다.
한쪽 벽면에는 세로로 깊게 파인 슬릿 창 네 개를 배치하여, 빛이 조심스럽게 내부로 스며들도록 하였고, 반대편 상부에는 가로로 길게 열린 슬릿을 두어 하늘의 일부와 시간의 흐름을 은유적으로 감지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슬릿들은 단순한 채광 장치가 아니다.
빛의 방향과 크기는 서울의 연간 남중고도 평균을 기준으로 설계하였으며, 하루 동안 빛이 떨어지는 각도와 위치를 면밀히 고려하였다.
그 결과, 특정 시간대에 슬릿을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형태로 정확히 내려앉도록 설정하였다.
이 빛은 단지 공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의 시간성과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때로는 빛이 바닥에 길게 깔리고, 또 어떤 때는 벽을 따라 흐르며, 공간에 머무는 사용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리듬을 체험하게 된다.
명상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과정 또한 단순하지 않다.
밝고 개방된 1층 열람실에서 시작해, 사용자는 양 옆이 막힌 긴 램프를 따라 천천히 2층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램프는 단순한 수직적 연결이 아닌, 감각이 점차 어두워지고 소리가 줄어드는 심리적 전이 장치로 작용한다.
그 끝에 도달하면, 마침내 곡면으로 감싸인 동굴 같은 독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조용하고 무거우며, 외부와 단절된 듯하지만, 빛이 만들어낸 미묘한 개방성과 생명력을 품고 있다.
이 안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단순한 정보의 습득을 넘어, 공간 속의 빛의 흐름과 벽의 질감,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유로 나아가게 된다.
책은 이 공간 안에서 지식의 매개체를 넘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