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3 '공간 읽기와 쓰기'는 건축적 사고의 체계를 점진적으로 정립해나가는 일련의 탐구적 훈련이었다. 이 과제는 단순히 공간을 관찰하거나 기술하는 수준을 넘어, 도면과 모형, 실측 및 작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축가의 설계 언어를 해독하고 그 이면에 내재한 의도와 전략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요구했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평면적 정보에 불과한 CAD 프린팅 도면과 수작업으로 작도한 선들의 조합을 통해 공간 구성의 논리적 전개, 조형적 질서, 구조 시스템의 계층성, 그리고 재료의 물성과 그 표현 방식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건축적 요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렀다. 이러한 도면 해석은 마치 다층적 단서로 이루어진 복합 퍼즐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정교한 인식 행위에 가까웠으며, 건축적 사고의 근본이 되는 공간 개념과 조형 감각, 구조적 직관을 동시에 자극하는 지적 경험이었다.
더불어 이어진 공동 모형 제작과 1:1 작도 실습은 도면 위의 추상적 해석을 물리적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매개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공간을 '읽는' 해석자적 위치에서 벗어나, 물성, 치수와 비례의 제약 속에서 구체적 공간을 '창조하는' 실천가로서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공동 모형은 축척이라는 도구를 통해 전체 공간 구성을 조망하게 했으며, 1:1 작도는 인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실감나게 체험하도록 이끌었다. 이처럼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이루어진 '공간 읽기와 쓰기'는 건축을 단지 시각적, 조형적 대상이 아니라, 지각과 해석, 구현이라는 복합적 층위를 가진 실천적 언어로 이해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과제 3의 시작은 배봉산 숲속 도서관에 대한 건축 답사와 현장 스케치였다. 내가 직접 전문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건축물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해석하는 답사 경험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었으며, 그만큼 건축 공간을 분석적으로 사고하려는 모든 시도가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건축가의 설계 의도, 공간의 조직 논리, 구조적 구성, 재료의 선택과 물성, 주변 맥락과의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인지하려는 과정은 새로운 차원의 '읽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이에 나는 답사 이전부터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준비하고자 하였다. 특히 해당 건축물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제공하는 공식 웹사이트를 참고함으로써, 설계 의도와 개념적 배경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사전 지식은 현장에서 실제 공간을 마주할 때 그 해석의 기준점이 되어주었으며, 개별 요소들을 보다 명확하고 일관된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현장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주목한 요소는 건물 이용자들의 동선 흐름이었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접근성과 가시성을 고려하여 도로변에 주요 출입구를 배치하는 경향이 있으나, 배봉산 숲도서관은 이러한 전형적 배치 방식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 도서관은 대로변에 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 출입구는 숲길 반대편으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건축가가 제시한 '산책로의 연장선상에 있는 숲속 도서관'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부합하는 전략적 동선 배치라 할 수 있다. 사용자의 경험이 인위적 건축물의 진입이 아닌, 자연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의 일부로 인식되도록 설계된 이 동선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건축-환경-사용자' 간의 유기적 관계를 염두에 둔 공간 조직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두번째로 집중한 요소는 재료의 선택과 그 물성에 대한 이해였다. 건축의 감성은 단지 형태나 비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색채, 질감, 시간에 따른 변형 가능성 등을 통해 심화되며, 이는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으로 전달된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전면에 어두운 회색 계열의 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숲의 배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시각적으로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하였다. 붉은색 벽돌과 같은 주변과의 이질감을 자아낼 수 있는 재료 대신, 중성적인 색조와 물리적 질감이 강조되는 재료 선택은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도록 하는 설계자의 섬세한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외부에는 조약돌이 배치되어 회색 벽돌과의 색채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일부에는 갈색의 목재가 사용되어 숲의 이미지와 물성적 친화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이러한 재료의 조합은 시각적 조화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견고함과 감성적 안정감을 함께 전달하며, '시간성'이라는 건축적 가치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세번째로 고려한 분석 요소는 건축물이 위치한 장소의 주변 환경이었다. 주변 거리의 분위기, 소음의 강도와 방향성, 태양의 방향, 바람의 유입 경로 및 속도, 인접 건물과 자연환경의 맥락적 관계 등은 모두 건축물이 어떻게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지닌 숲에 위치해 있어,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과 매우 높은 수준의 정서적 합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 그리고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환경 속에서 이 건축물이 드러내는 장면성은, 마치 한 편의 정제된 영상 미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 구성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 자체가 감각적 서사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도서관은 두 개의 매스가 일정한 각도로 꺾이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형태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답사 초기에는 이와 같은 건축 형태가 채광과 조망을 고려한 결과라고 추정하였다. 특히 남향 채광 확보를 위한 창호 배치 전략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추후 건축가의 강연을 통해 이 꺾임이 단지 형태적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지의 축선이 꺾여 있는 지형적 조건에 따른 필연적인 구성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나의 해석이 실제 설계 의도와는 다른 방향일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는 설계라는 것이 단순히 이상적 조형의 실현이 아니라, 맥락적 제약 속에서의 창조적 해석이라는 점을 다시금 실감하게 해준 대목이었다. 건축을 단편적 결과물이 아닌, 다양한 조건과 의도, 제약이 응축된 복합적 산물로 바라보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제시한 설계 개념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지점은, 대지의 고저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상층이 두 개로 인식되는 입체적 구성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수직적 레벨 차이를 이용한 공간 배치는 단순한 단차 조절의 차원을 넘어, 프로그램 간의 독립성과 상호 관계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경사지를 대지로 삼고 있으며, 그 자연적 기울기를 건축적 장치로 전환함으로써 상부와 하부, 즉 상층과 저층이 각각 자율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상부층에 도서관의 기능이 배치되어 있었고, 하부층에는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공동 육아방, 건강 관리실, 공원 관리 사무소 등 다양한 기능이 유기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공간 구성이 가능했던 것은, 지형 조건에 순응하는 동시에 이를 창의적으로 건축화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특히, 경사로 위에 위치한 건축물의 위계는 건축물이 대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반영하고 있었다. 상층의 도서관 공간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자연광의 유입이 풍부하고 조망이 탁월했으며, 이는 이용자에게 개방감과 휴식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반면, 하부층은 독립된 복도와 적절한 외부 공간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폐쇄감 없이 기능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직적 배치는 단순히 형태적 해법이 아니라, 다양한 세대를 고려한 복합적 프로그램 수용의 틀로 작동하였고, 한정된 면적 안에서 복수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용하려는 설계자의 의도가 실현된 대표적 사례라고 판단된다.
결국 이와 같은 구성은, 사이트의 물리적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계 전략의 출발점이자 근거로 삼아 능동적으로 공간화한 결과였으며, 나는 이를 통해 '좋은 건축'이란 외형의 미학에 앞서 주어진 조건을 얼마나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해내는가에 달려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층위의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며, 복합성과 명료성을 동시에 확보한 밀도 높은 공간 설계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억되었다.
건축 답사를 수행했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공동 과제로 진행되는 공동 모형 제작과 평면도 및 단면도 제도 작업을 위한 정밀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었다.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실제 공간의 스케일과 구성 요소의 물리적 치수를 직접 측정하는 과정을 통해, 도면 상의 추상적 정보와 실제 공간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나는 줄자를 준비해 현장에서 가능한 모든 요소의 실측을 시도하였다. 예컨대, 책장의 정확한 위치, 높이, 각 단의 세부 치수(가로 및 세로), 전체 길이, 그리고 사용자의 동선과 밀접하게 연계되는 의자의 크기와 높이, 좌판의 두께, 다리의 삽입 깊이와 경사 각도까지 꼼꼼히 기록하였다. 책상의 높이와 가로 및 세로 치수, 일부 가구에 적용된 기울기 각도, 의자 다리의 높이 차와 가구 간 거리 등은 향후 모형 제작과 도면 제도의 정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가능한 한 정확하게 실측하는 데 집중하였다.
특히, 동일한 형식의 가구가 반복 배치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와 용도의 가구들이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가구마다 일일이 치수를 측정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간적 제약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측정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단지 데이터 수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치수와 스케일에 대한 체감적 이해를 획득하는 귀중한 계기였다. 건축 도면 속 숫자로만 인식되던 '치수'가 실체를 가진 공간적 감각으로 환원되면서, 공간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상호 비례와 관계를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실측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도면상에 이미 명시되어 있던 일부 치수들까지 중복해서 측정하거나, 실제로는 이후 작업에 필요하지 않았던 미세한 디테일까지 측정하느라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과잉 대응이었지만, 동시에 '현장에서의 관찰과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선택적 해석 능력을 요하는지를 절감하게 해준 학습의 일환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행착오조차도 향후 건축 실무나 학습 과정에서의 데이터 선별 능력과 공간적 판단력을 배양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고 느꼈다.
도면 제도 과정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행되었고, 이는 전적으로 과제의 성격이 설계 행위라기보다, 기존의 도면을 해석하고 제도 규칙을 학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제도의 목적이 창작보다는 해석과 기초적 숙련에 있었기에 부담보다는 학습의 기회로 다가왔고, 보다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으로 도면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도면이라는 2차원 매체가 공간의 질서와 구성 논리를 어떻게 압축적으로 전달하는지를 체감하게 되었으며, 건축 언어로서의 선의 위계와 기능, 그리고 제도상의 규칙들을 실감나게 익힐 수 있었다.
특히 평면도 제도는 제도판과 제도 도구의 사용법을 실제로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평면도는 수평선과 수직선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도면 특성상, 수평자와 삼각자를 이용해 정밀한 수직선과 수평선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도구의 기계적 조작이 아니라, '정확성'이라는 건축 제도의 본질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반복적 선긋기 행위는 단순한 기계적 숙련을 넘어, 비례 감각과 좌표 설정, 공간 인식의 논리를 체화하는 중요한 연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면 상에서 사용되는 선의 위계에 대한 학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외벽선은 가장 굵은 실선으로, 치수 보조선은 중간 굵기의 실선으로, 가구나 기호는 가는 실선으로 표현하며, 각 선은 그 의미와 중요도에 따라 명확한 계층 구조를 갖는다. 나는 이러한 선의 계층 체계를 학습하며, 도면이라는 언어가 시각적 정보 전달을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설계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도면의 문법을 익히는 과정은, 건축가가 도면을 통해 사고를 정리하고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과제는 단순히 과제를 '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라는 기술을 통한 학습과 이해의 과정으로 접근하려 했기 때문에, 나는 무엇보다 도면 제작의 순서를 철저히 지키는 데 집중하였다. 도면의 위치 설정부터 시작하여 중심선과 축선, 치수선의 배치, 기둥의 위치 설정, 문과 창호 기호의 삽입, 벽체 표현, 그리고 최종적으로 각종 문자 기입에 이르기까지, 평면도 구성의 절차를 정확히 따라해보는 경험은 향후 건축 실무에서의 도면 작업을 할 때 기반이 될 수 있는 실질적 자산으로 축적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도면을 그리는 것이 단순한 기계적 작업이 아닌, 건축적 사고의 시각화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고, 이는 공간을 '읽고 쓰는' 능력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단면도 제도 과정은 무엇보다 기존 도면을 정밀하게 전사하는 데 집중하였다. 처음에는 단면도가 단지 건물의 전체적인 높이나 지붕의 경사,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거리와 같은 수직적 요소들을 단순히 기입하는 부수적인 도면이라고 인식하였다. 평면도에 비해 공간 구성이나 동선 파악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이후 공동으로 수행한 모형 제작 과정에서 전환되었다.
단면도는 건물의 수직적 구조와 공간의 단차, 재료 두께, 창호의 위치와 개구부의 상하 비례, 보와 기둥의 단면 정보 등 건축의 입체적 논리를 해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도면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공동 모형 제작 중 보의 높이나 기둥의 길이, 지붕의 길이와 각도, 창문의 하단 및 상단 높이 등 세밀한 요소들을 구현하려 할 때, 단면도가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평면도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높이 정보, 입면 비례, 내부 천장고 등의 수직 구성 요소가 모형의 사실성과 정확성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단면도는 단순한 보조 도면이 아니라 공간의 '세로적 깊이'를 시각화하는 핵심적 도면임을 체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도면의 각 유형이 담고 있는 정보의 위계와 특수성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건축 표현의 다층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즉, 평면도가 '어떻게 배치되었는가'를 말해주는 도면이라면, 단면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혹은 '어떻게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도면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사고와 입체적 상상을 촉진하는 도면적 언어라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단면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단순한 정보 매개체에서 건축적 사고의 깊이를 확장시켜 주는 도구로 변화하였고, 이는 향후 설계와 제작 과정에서 도면을 다루는 나의 태도에도 명확한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다.
반면, 공동으로 진행한 공동 모형 제작 작업은 도면 제도와는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과 긴장도를 요구하는 과제였다. 단순히 공간을 축소해 구현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고도의 정밀성과 협업 능력, 시간 관리, 재료에 대한 감각적 이해까지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실천적 건축 행위였다. 팀 구성원 간의 역할 분담과 일정 조율은 물론, 폼보드의 절단, 접합, 표면 처리 등 모든 과정이 밀리미터 단위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섬세함을 요구했다. 특히 10T 폼보드에서 창호 개구부를 정확하게 뚫어내는 작업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은 과정이었다.
작업 초기에는 폼보드의 전면에 창문 위치를 그린 뒤, 한 번에 깊이 있는 절단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방식은 폼보드 재질 특성상 절단면이 들리거나 찢어지고, 후면에서는 정밀한 직사각형 모양이 나오지 않아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게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단면 절단은 단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점진적으로 절개선을 누적해가는 방식이 더 정밀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또한 전면에서 표시한 치수를 후면에서도 동일하게 표시한 뒤,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절단하여 작업을 수행해야만 보다 정교한 형태가 구현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제작 기술의 향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면까지 고려하는 건축적 사고'의 본질에 접근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끝에 익숙함이 쌓이고, 모형 제작에 필요한 일종의 노하우가 체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동료 학우들과의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작업의 효율성과 정확도가 점점 향상되었고, 개별 작업자 간의 피드백 교환과 반복적인 점검 과정은 결과물의 완성도를 눈에 띄게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처럼 공동 모형 제작은 단지 결과물을 향해 달려가는 수작업의 연속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비례, 세부 디테일을 손으로 체감하고, 협력 속에서 건축적 판단을 조율해나가는 복합적 학습 경험이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었으며, 이는 단지 기술적 성취라기보다는 협업과 사고의 축적이라는 점에서 깊은 만족감을 남겼다.
1:1 작도는 과제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행한 작업이었으며, 처음 접했을 때 다소 부담스럽고 낯설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넓은 평면 위에서 실제 치수를 기준으로 도면을 옮겨 그리는 작업은, 단순히 선을 긋는 행위를 넘어 치수, 비례, 각도의 정확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고도의 정밀 작업이었다. 특히 평행선과 직각을 구현하는 데 있어 수평자, 삼각자, 줄자 등 다양한 도구를 동시적으로 운용해야 했으며, 손의 움직임과 눈의 감각, 그리고 공간에 대한 직관이 긴밀히 연결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작업은 나에게 공간에 대한 감각적 이해를 실질적으로 확장시켜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1 스케일로 진행되는 작도는 단순히 기존 도면을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 실재하는 공간의 조건을 몸으로 체감하며 다시 '그려내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공간 내부에 존재하는 가벽의 위치와 기능, 단열재의 구체적 두께와 배치, 그리고 내벽의 굴곡을 보완하기 위한 벽체의 이중 구조 등은 이전의 축척 도면이나 모형 작업에서는 놓치기 쉬운 미세한 요소들이었지만, 실제 치수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1:1 작도를 통해 처음으로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이러한 세부적인 요소들은 단순히 기술적 디테일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구성하는 건축가의 사고 구조와 건축 언어의 깊이를 실감하게 해주었으며, 그 결과 내게 있어 '공간을 그린다'는 행위의 의미가 훨씬 더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재정의되었다. 공간의 현실성과 물리성을 기반으로 한 이 작도 경험은, 나에게 도면이라는 추상 언어의 구체적 구현 방식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으며, 궁극적으로 공간 이해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학습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과제 3 '공간 읽기와 쓰기'는 도면 해석과 답사, 제도, 모형 제작, 1:1 작도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건축적 사고의 구조를 실천적으로 형성해나간 여정이었다. 평면적 정보를 다루는 기초 작업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입체로 구현하고, 다시 실제 크기의 현실 공간으로 확장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내가 공간을 단지 '보는' 존재에서, 공간을 '구성하고 해석하는' 실천자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특히 배봉산 숲속 도서관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번 과제는, 건축가의 설계 의도와 공간 구성 논리를 추적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현함으로써 건축이라는 언어의 다층성과 구조적 복합성을 깊이 있게 경험하게 해주었다. 더불어 이번 과제는 단일한 목표를 향한 직선적 진행이 아닌, 향후 설계 및 표현 과제에서 반복될 핵심적 작업 요소들을 미리 훈련하고 점검하는 일종의 '건축적 리허설'이기도 했다. 실제로 과제 3에서 수행한 대부분의 과정인 현장 실측, 도면 해석, 제도, 모형 제작 등은 곧바로 과제 4에서 반복 수행해야 하는 주요 작업들로,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단지 한 과제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를 위한 사고와 기술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이번 과제는 도면 위에 존재하는 선 하나하나가 공간적, 물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결국 실재하는 공간의 질과 감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 과제를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사고하는 태도 모두에서 보다 주체적이고 정제된 시각을 갖게 되었음을 확신한다.
참고자료
1) 건축사사무소 리옹, 이소진, 일상의 배경이 되는 건축: 배봉산근린공원 숲속도서관,
https://vmspace.com/project/project_view.html?base_seq=MjQ3Nw==
2) 한겨레, 김도형, 숲속에 도서관 지었더니, 핫플레이스 떠올랐다,
https://news.nate.com/view/20191121n26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