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책공간 만들기라는 주제를 우리 스튜디오는 미리 전달받았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책을 읽는가? 내가 무슨 책을 읽는가?에 대한 생각을 깊게 이어나가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조용히 격리된 나 혼자만의 공간이였다.
이어폰을 끼거나 커튼을 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 혼자 고립시키고 나 혼자 오롯이 집중하는 공간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책을 읽는 곳은 개방된 카페가 아니라 커튼을 친 프리미엄 고속버스나 내 방 깊숙한 곳이였다.
그렇기에 '나 혼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했다.
실제 배봉산 숲 도서관의 문제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1학년 전체 답사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보다 더 사랑받는 공간‘
역설적으로 사랑 받는 공간이기에, 북적이는 사람들 속 나라는 존재에게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숲과 나, 그리고 책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별관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과정을 진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 사유의 방, 손기정 선수 기증 투구 전시실 / 대전 원도심의 4층 책방 건물
나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 필요한 것은 절제된 조용함, 어두움, 그리고 집중을 시켜줄 중앙의 오브제.. 등으로 파악했다.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중앙박물관의 전시홀이라고 생각해 스터디했다,
추가로 원형 공간을 떠올렸기에 원형 공간을 둘러싼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저 공간을 갔을 때, 휴대폰 안에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나를 둘러싼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내 공간에 들어와서 저런 위압감과 일종의 경외심이 든다면 말 그대로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엄숙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공간자체가 집중을 유도하는 공간인데, 이 책으로 둘러싼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용자일 수 있으니 열고 닫을 수 있으면 좋겠다 떠올렸다. 그렇기에 책장을 단순한 책장이 아니라 리프트업처럼 열고 닫을 수 있게 계획했다.
무지막지하게 그리고 고민했다. 정말정말 단순한 공간이다. 평면적인 원, 중앙에 있는 오브제, 나를 둘러싼 책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진행해야할지 감을 못 잡았다는 것이다. 뭘 건드려야할지 몰라 길을 잃었다.
그러던 도중 과제3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4가 시작되었다.
사이트 조사를 하던중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사이트는 계곡이다. 물이 흘렀던 흔적이 있는 계곡, 오른쪽에 위치한 네모난 나무 간이 건물은 배봉산 정상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위치해있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 사이에는 놀이터가 위치해있고, 배봉산 숲속 도서관과는 50m가량 떨어져있다.
계곡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중앙의 오브제를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바위로 잡았다.
같은 스튜디오 태화씨의 의견이였다.
놀이터라는 장소가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놀이터 -> 숲 오솔길로 들어오는 시퀸스가 극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을 이용한 청각과 시각적 기믹을 사용할 생각이였기에 오히려 좋아라는 마인드로 진행해나갔다. 이런 마인드 앞에 내 생각을 차분히 한 번 더 정리하고, 어떤 형태로 계획할건지 구체적으로 잡아나갔다
왠지 모르겠으나 물을 쓰고 싶었다. '집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각과 청각적 자극이니까! 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뭐랄까.. 그냥 물을 쓰고 싶었다. 프로젝트 전체를 통틀어 굉장히 감각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과제2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형상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이제 똑같이 How가 아니라 What을 고민할 차례였다.
물론 그 전에 사이트를 조사하는 것이 필요했다,
국토지리정보원 외 다양한 사이트를 뒤집어봤으나 우리가 원하는 스케일인 1/30이 안 나왔다.
1/5000이라는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스케일 뿐이기에 직접 재러 출발했다.
우연찮게도 같은 스튜디오 채운씨와 같은 사이트였기에 대지조사를 같이 진행할 수 있었다.
길이랑 높이를 재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나서 잰 치수를 바탕으로 1/5000 등고선 파일에 캐드를 쳐서 등고선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배치도를 만들었다. 캐드를 뽑고 먹선으로 딴 후 그 위에 건물을 그리는 식으로 그렸다.
(위는 최종 배치도)
이렇게 백도면을 완성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도면에 들어갈 시간이였다.
다양한 스케치를 그리며 내 컨셉과 아이디어를 디벨롭시켰다.
프로그램, 형태가 어느 정도 완성된 느낌이지만, 여기서 '어떤 독서'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리고 형태적으로 공간의 다분화가 필요했다. 단순한 공간 속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집어넣으려했기에 뭔가 붕 뜨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기에 단차나 스킵플로어 같은 공간적 장치를 이용해 공간을 다분화하려했다. (위)
물과 조용한 공간, 어떤 독서?
나에게 독서의 의미부터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다음 크리틱에서 더 큰 난관을 마주쳤다. 전면을 뻥 뚫린 통창으로 하고 싶었는데, 천장과 내려가는 바닥 높이, 천장 두께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면 생각했던 형태가 나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교수님의 크리틱이 충격이였다.
진입로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것. 매스와 어울리지도 않고 진입 방식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것
뭔가 내가 여태까지 상상해오던걸 엎어야하는, 그런 상황에 봉착했다.
tl----원하게 사이트를 바꾸기로 했다.
다 엎는 게 아니라 사이트만 바꾸는 것이였다. 그렇기에 별로 타격은 없지 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진행했다.
바뀐 사이트는 물펌프였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딱 물펌프가 적당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사이트다.
숲에 반쯤 둘러쌓여있으면서도 절벽같은 경사지. 거기다 물펌프라는 사이트의 아이덴티티.
사이트를 바꾸고 나서야 아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위 스케치가 그 생각을 그린 그림이다. 숲속 안에 있는 네모난 기하학적 유리튜브, 그 속에 있는 독서공간.
이렇게 컨셉을 다 잡았다.
이제 스터디 모델 작업에 들어갔다
1차 스터디 모델이다.
2차 스터디 모델이다.
놀랍게도 저 계단 그린다고 밤을 샜다.
보에 안 걸리고, 충분한 층고를 확보하고, 이쁜 계단을 만들기 위해...
교수님께 "고뇌가 느껴진다"라는 크리틱을 받았다.
스스로도 만족했지만 예상보다 더 좋은 크리틱을 받았다. 그에 따라 "내려갈수록 잠식되어가는 공간"을 컨셉으로 잡았다.
이러한 컨셉이 물펌프스러웠다.
물을 끌어올리는, 입체적인 이동을 유도하는 펌프의 특성상 정확히 내 독서공간과 어울렸다
내 전체적인 프로젝트 프로세스다. (위)
디벨롭의 디벨롭의 디벨롭이다
사이트를 바꾸고 하는데도 매스의 변화가 엄청나다
이런 식으로 슬슬 끝이 보였다.
내려갈수록 문학 -> 명상 -> 철학 순으로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행위가 강해진다. 각 프로그램 공간에 단차를 두어 공간을 분리하고, 그 분리한 공간의 스케일을 고려해 어떤 단차는 책상이, 어떤 단차는 의자가 된다.
공간 확보를 위한 두 종류의 계단 (300, 200)은 오히려 공간적으로 기믹이 되었다.
쑥 내려오는 느낌을 주는 300의 계단은 공간의 출입 시퀸스를 강조한다. 올라가고 내려갈 때의 계단 한칸 한칸 쑥쑥 변화는 공간을 의미한다.
200의 계단은 천천히 내려가는 공간이다. 독서와 수공간 속 나를 찾는 공간이기에 천천히 변하는 공간을 보여준다.
이런 입체적인 공간 변화 속 중앙의 우물은 나를 보여주는 거울인 동시에 청각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한다.
입체적으로 변하는 나의 위치에 따라 가운데에 있는 물우물은 계속 변하는 나를 보여준다.
우물 속에는 나뿐 아니라 유리튜브 밖 나무숲과 하늘도 보일것이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더불어 통창 밖으로 보이는 숲과 계곡이 나로 하여금 자연속에서 집중하게 만들 것이다.
단면도 진짜 열심히 그렸는데 옅은 선으로 그어서 거의 안보인다
아래에 다른 사진 첨부했다.
완성된 도면이다.
Book-Pump : 나를 끌어올리다.
독서를 나를 찾는, 즉 나를 끌어올리는 행위로 파악했다. 그렇기에 나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물펌프라는 공간의 특성, 계곡이라는 사이트를 활용해 자연 속 애매하고 자연스럽게 섞인 무언가를 만들려했다.
아래는 모델 사진이다
2개의 창이 있다.
물펌프 건물 자체를 통 유리로 바꾸었다. 숲 속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가장 안 철학공간이 밝지 않겠는가? 라는 크리틱이 들어올 수도 있으나
계단을 사용해 이를 막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철학 공간을 가장 깊숙히, 어둡게 배치하여 절제된 어두움을 유도했다.
위는 암실에서 찍은, 아래는 자연광에서 찍은 사진이다.
확실히 자연광이 더 아름답다.
거기다가 내가 의도한, 숲 속에 있는 유리 탱크 속 독서 공간이라는 의도를 더 잘 보여준다
이 구도가 랜더링한 것처럼 이쁘게 나왔다.
실제 외부 사진이다. 뭔가 웃겨서 넣어봤다.
위 사진은 랜더링처럼 엄청 이쁜데 실제는 이런 모양이라니.. ㅋㅋㅋ
무지막지하게 많이 적고 그렸는데 이걸 다 넣으려다보니 엄청 길어졌다.
이해가 쉽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를 전한다.
힘들었지만 남는게 있나? 있지 않을까.
재미있고 의미 있는 한 학기였다. 우리가 첫 커리큘럼 변화 대상자여서 선배들의 케이스 스터디가 불가능했다는 점이 아쉽다.
내가 좋은 케이스 스터디 대상이 되기를 바라며 아카이빙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