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산 숲속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과제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만의 책공간이 어떤 것일일까. 이때 이러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망원시장의 북적하면서도 한적한 느낌이 좋아요." 내가 책을 잘 읽는 환경도 얼핏보면 이런 모순적인 환경인 것 같다. 오픈된 공간도 필요하지만 나만의 분리된 공간도 필요하다. 혼자서 책을 읽지만, 다 읽고는 외부와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책에만 몰두할 수 있지만 주변과 상호작용 할 수 있는, 경계가 있지만 경계가 허물어지는 요소가 있는 책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또 숲속도서관의 취지와 맞물리는 책 공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부분,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부분도 함께 고려하였다.
숲속도서관 답사를 여러 번 하며 어떤 곳에 사람들이 머무는지를 관찰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휴식하는 평상이 있는 곳을 사이트로 선정했다. 바로 앞이 숲속 풍경이고 위에 나무와 처마가 있어 햇빛도 막아준다.
이후 사이트에 맞는 공간을 위치시키는 방법과 그 형태를 생각했다. 주변 나무들을 보존하기 위해 평상 자리 아래로 파고드는 지하 공간을 생각했고, 나무의 범위를 표시한 원에 수많은 접선들을 그려보며 최종 형태를 결정했다. 이 공간은 도서관과 맞붙어있지만 분리되어 있는 외부 공간이다.
책 공간은 나만의 책 읽기 과정을 고려한 대로 2개의 공용 공간과 1개의 개인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도서관과 분리되어 있지만 '책장'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요소를 두어 기존 도서관과 연결되는 부분을 만들고자 했다.
각 공간을 더 살펴보면, 바깥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바로 마주하는 공용 공간1은 여러 사람들 속 1인 책상에서 정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고정된 책상과 의자에서 개인만의 독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계단을 두 칸 더 내려오면 보다 더 넓은 공용 공간2가 나온다. 이 공간에는 방석을 원하는 위치로 가져와 앉아서 또는 누워서 독서하는 등 유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 특히 공용 공간2에서는 벽으로만 둘러싸인 공간이 아닌 정면에 통창을 비스듬히 두어 흙이 나에게 오는 듯한 느낌을 주고, 땅속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평소 경험했을 높은 건물에서의 도시 풍경이 아닌, 낮은 곳 그 아래 공간에서 스스로 되돌아보고 휴식하는 경험을 했으면 했다.
이 두 공간을 만들면서 사라진 평상의 역할을 살리기 위해 땅 속 공간을 지면 위 400mm까지 띄워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곳을 마련했다. 또 공용 공간 안에서는 밖에서 사람이 앉아서 시야가 차단되지 않도록 천장을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공간으로 내려갈 때는 천장이 없고 하늘로 뚫려있는 공간이다. 높고 밝은 공간에서 보다 낮고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하늘 정원과 콘솔레이션홀의 관계처럼. 개인 공간에는 정말 '벽과 나'만 있다. 계단을 더 타고 내려오면 개인 공간이 나온다. 여기서는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명상을 할 수 있다. 온전히 한 명 만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공용 공간에 있는 책 한 권을 들고와서 독서를 할 수도, 앉아서 명상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제임스터렐의 작업처럼 뚫려 있는 천창은 하늘을 그림 조각 느끼도록 해 혼자만 분리된 공간에서 하늘만 보이는,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세 공간은 용도에 따라 위치와 깊이에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보다 쉬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쪽에는 공용 공간이 위치하고 안으로 들어 가면 개인 공간과 마주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또 개인 공간으로 들어 갈수록 공간이 더 깊어지도록 하여 공용 공간보다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숲속도서관은 모두를 위한 공공 공간으로, 모두가 들어와서 책을 보고, 모든 게 열려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나는 경계를 짓는 시도를 했다.
개인 공간을 만들고, 시선을 차단하거나 조절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경계는 허무는 요소도 두었다.
원할 때 밖을 볼 수 있고, 또 밖에서 안을 볼 수도 있다.
특히 도서관과 나만의 책 공간이 공유하는 책장은 이 활동(경계를 짓고 허무는 것)의 핵심 요소이다. 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도서관 내부와 외부에서 읽을 수 있어 서로를 연결한다. 또 책장에는 출판된 책들만 있는 것이 아닌 백지 책이 함께 꽂혀 있어 자신의 생각 공유하고 또 남길 수도 있다. 이 백지 책에는 책 공간을 찾은 사람들이 적은 글이 모여 하나의 공동 책을 만든다. 공동, 책장은 사람들 간의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고, 백지 책은 그 상호작용의 결과를 눈으로 보여준다.
첫 시작으로 독서 상황과 주변 자연물을 고려해 물리적 공간으로 경계를 만들었다. 이 독립된 책 내부 공간끼리 연결하기 위해 계단을 만들고, 또 공동 책장을 두어 경계를 허물었다. 이러한 나만의 책 공간을 만드는 과정, 즉 '경계, 짓고 허물기'를 통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주변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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