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설계자의 메시지가 담긴 책과 같기에 다양한 의도로 만들어지고 또 읽을 수 있다. 이번 과제는 이러한 다양한 의도와 목적을 통해 만들어지는 공간을 읽고 써보는 시간이었다. 목요일에 평면도를 받고, 바로 도서관을 방문하여 수치를 쟀다. 배봉산 숲속도서관의 첫 느낌은 '따뜻함'이었다. 우드톤으로 이루어진 내부 공간에서 태양빛 같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라는 재료와 주황빛 조명이 따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배봉산 숲속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도서관의 다양한 수치를 직접 재며 공간의 의미를 고민했다. 당시 현장에서 "왜 의자의 높이가 낮을까?"라는 작은 궁금증이 생겼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연령대가 사용하는 공공도서관이기에 그런 설계가 이루어졌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장 답사 후, 도서관의 2층 평면도와 입면도를 직접 작도했다. 먼저 축선을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다른 부분의 수치를 직접 재면서 1:100 도면을 완성했다. 과정에서 1:150 도면을 1:300 스케일자를 이용해 치수 파악을 하며 축척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이해했다. 처음 평면도를 그릴 때는 선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렸지만, 입면도를 그릴 때는 선들의 의미와 선과 선의 연결을 고민하며 작업했다.
또한 입체로 만드는 공동 모형 작업을 하면서는 선들을 쓰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평면에서 입체로 만들면서 선들이 어떻게 공간을 이루는지를 확인했다. 평면도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치수들은 현장방문을 통해 얻었던 치수를 이용하며 팀원들과 작업했다. 첫 팀 작업이어서 초반에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함께 모형을 조립해 나갔다. 나는 벽체를 맡았고 이후 기둥, 책장, 지붕의 다른 파트도 도우면서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1:1 드로잉은 또 다른 배움의 연속이었다. 처음부터 도면의 비율이 달라 의견 충돌이 있었다. 정확성을 주장하는 의견과 통일성을 중시하는 의견이 맞섰고, 결국 교수님의 도움으로 모두가 1:150과 1:30 도면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처음 선을 그릴 때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벽체를 완성하니 주변의 단열재, 벽돌, 창을 쉽게 그릴 수 있었다. 벽체와 단열재, 단열재와 벽돌, 또 벽돌과 벽돌 사이사이의 스케일감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나는 벽체와 유리창을 주로 담당했는데, 다른 팀과 만나는 부분을 그릴 때 또 다시 충돌이 발생했다. "98cm가 맞을까? 그냥 100cm라고 하지 않을까?" 작은 수치를 놓고 고민하던 그 순간, 건축이 결코 완벽한 숫자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래서 우리는 100cm로 통일했다. 계속해서 수치의 정확성과 통일성이라는 큰 주제에서 팀 내에서 그리고 팀과 팀이 소통하며 하나의 도면을 완성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건축이 숫자의 완벽성보다 현장에서의 유연한 소통과 협의를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헙하며 깨달았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단순히 공간의 형태를 옮겨 그리는 것을 넘어서,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역으로 추적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열람실의 배치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사용자의 동선을 어떻게 유도하는지, 빛과 재료를 통해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는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윤동주문학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숨쉬는 그물, 인왕산 숲속도서관 답사를 통해 만난 다양한 공간들 역시 이런 시선으로 다시 보였다. 각각의 공간은 건축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나는 그 공간을 '읽고', '걷고', '느끼며' 그 메시지에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는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으로 이어지는 동선 속에서 빛의 대비와 높이의 대비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인지하며 낮고 어두운 공간에서 높고 밝은 공간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또 윤동주문학관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공간 자체가 '열린 우물'이라는 예술작품으로써 기능한다는 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공간 속 작품이 예술일 수도 있지만 공간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번 과제를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설계자의 의도를 파악해 보는 것과 평면을 공간으로, 공간을 평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 즉, 공간을 읽고 쓰는 힘이다.
[참고자료]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1998(재개정판 2014), p.263-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