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기억을 되짚어본다면, 햇빛이 뜨거운 대낮부터 읽다가 노을빛이 기웃기웃 창문으로 스며들 때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며 책을 덮고 느꼈던, 책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이 기억이 난다. 책을 읽다 보면 두 세계가 충돌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곤 한다. 이 두 세계의 충돌 -이를테면 책 읽는 도중에 들리는 새의 지저귐이라던가, 종이 위로 지는 흔들거리는 나뭇잎의 그림자, 책에서 잠시 눈을 떼고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책 읽기라는 행위를 단순한 몰입을 넘어 시간, 그리고 공간과의 상호작용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시공간의 흐름을 옅게 느낄 수 있는, 책과 현실의 두 세계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유연하게 섞이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하였다.
화려한 장식품이나 창의적인 건조환경은 책을 읽는 행위에 있어서는 그저 방해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장 단순하지만 또 가장 직설적인 형태의 공간을 설계하였다. 층고는 13m, 너비는 2m x 2m 보다 살짝 넓은 정도의 독방이며, 동, 남, 서쪽에 창이 높게 뚫려있는 구조이다. 13m라는 높이는 아주 직관적으로 나온 높이인데, 아마 인간이 가장 큰 심리적 공포를 느낀다는 높이가 13m여서 반대로 머리 위에 있는 천장도 13m 떨어져있으면 매우 높아보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해의 연직 이동이 큰 동쪽과 서쪽의 창은 세로로 길게 뚫어 책을 읽다가 천장을 보면 시계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의 이동 방향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남쪽의 창은 해가 가장 강하게 내리쬘 시간인 것을 고려하여, 가로로 긴 창을 여럿 뚫어 강한 햇빛이 책의 세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해가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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