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이란 무엇인가. 흰 A3 용지를 보며 든 생각이다. 교수님은 우리가 그리게 될 도면은 자세한 사항들이 꽤나 많이 생략된 도면이라 하셨다. 그럼 이 도면이 도면이라 말 할 수 있을까? 그냥 위에서 내려다 본 그림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작 연습일 뿐인 연습도면을 그리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고?”
슬쩍 봤을 땐 꽤나 단순하지만 직접 손을 대 그려보는 순간 생략했음에도 디테일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기들과 벽돌 사이 모르타르를 위한 틈이나 창틀을 째려보며 옛날 건축가들은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도면을 바탕으로 1/30 스케일로 공간 모형을 제작했다. 이때까지만해도 어떤 치수나 공간감에 대한 생각이 크게 들진 않았다. 이때 얻은 것은 우드락에 대한 물성과 우드락 두 장을 겹쳐 창문을 구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명제 뿐이었다.
이후 일대일 도면을 그리며 생략된 도면일지라도 디테일해야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확대해두니 그게 무엇이든 적나라하고 거대하게 다가왔다. A3 도면에서 0.5미리의 오차라도 있다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완성된 도면을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다. 이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인상깊었다.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완성된 공간을 보면 우리집이 이렇게 작다고요? 하고 불만을 가져요. 그럼 화난 클라이언트들을 진정시키는 건 우리 몫입니다. 완성되면 다를 거라고 설득해야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일대일 도면을 그려보지 않았다면 나도 화난 클라이언트가 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가벽, 기둥, 단열재의 두께를 보고도 놀랐지만, 특히 조교님들이 가져다주신 창틀 샘플을 보고 놀랐는데, 나는 여태 이중창이란 유리 두 장이 틈 없이 붙어있는 것을 일컫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 샘플을 보니 유리 두 장이 간격을 두고 떨어져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방음, 보온 효과를 위해 이중으로 만들었다던데, 생각해보니 당연히 유리 두 장 사이에 틈이 있어야 유리 두 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틈이 없으면 유리 한 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5월 초 연휴 기간에 답사차 가게 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콘솔레이션 홀이다. 영화 컨택트의 세워진 UFO를 닮았다. 나는 스크린을 통해서만 본 UFO에 숭고함을 느꼈는데, 그것의 반의 반도 안 될 콘솔레이션 홀에도 숭고함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A3 도면이 스쳐가며 이 숭고한 홀의 평면도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졌다. 정형화된 구조 중 필로티 구조와 약간은 비슷하다 생각해 필로티 구조의 평면도를 찾아보았다. 필로티 구조는 벽이 없는 층과 있는 층을 분리해 나타내는 듯 했는데, 찾아보고나니 더욱 미궁에 빠졌다. 이 홀은 층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층의 평면도가 두 장이 나올 수 있나? 라는 의문을 갖다가도 평면도 한 장, 단면도 한 장이면 표현이 가능할 듯 싶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다. 이런 경우 평면도를 어떻게 그리는지 말이다. 이번 과제와 답사를 통해 얻은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그럴듯해보이고 멋있는 무언가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과제는 앞으로 남은 9학기를 위한 주춧돌이라 기록하며 마무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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