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과제는 사람들이 쓸 공간을 만드는 첫 과제였다. 그동안 사물을 탐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무언가를 만들고,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는 과정에 있었는데, 이젠 그것들을 활용할 차례였다. '나만의 책 공간'이 내가 만드는 나만의 첫 공간이 되었다.
교수님께선 우리가 자주 접한 열람실3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길 권하셨다. 나 또한 열람실3에 가장 관심이 갔다.
책 공간은 책을 읽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책을 통한 여러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책에서 비롯된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혹은 사색을 하는 것 또한 이에 포함된다. 그렇기에 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요소는 '시선'이었다. 난 무언가를 할때 어떤 것이 눈에 밟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공간, 안보이는 공간, 누가 나를 볼 수 있는 공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공간 등등, 시선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다양화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도서관의 특성 상 다양한 사람들이 책을 보러 오는 것이기에, 최대한의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일단 주변에 나무가 많았기에 나무와 함께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존과 다르게 나무를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새로운 층을 계획하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가 아닌 나무를 바라보며 집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반해 반대편엔 놀이터, 등산로, 카페 등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간이었기에 탁 트인 테라스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사람들이 오가고 아이들이 뛰노는 걸 보고 느끼며 사람들은 책을 읽은 다음, 이에 대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공간을 구상해보았다.
교수님께선 이 그림을 보고 2층으로 오르는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남겨주셨다. 간단하게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 보단, 그 과정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올라가는 과정마저 새로운 성격의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더 좋은 책 공간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곧바로 올라가는 과정이 재밌었던 경험을 떠올려보았다.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 속에 들어가 본 경험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블록을 다양한 높이로 쌓아올린 듯한 그 구조물은 오를 때에도 재밌었지만, 보기에도 흥미로웠고 앉을 장소를 내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어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자유로운 기분일 것이다. 자유롭게 앉고 오르고, 보는 곳을 달리할 때마다 다른 곳이 펼쳐진다. 이는 평소에는 얻지 못하는 x,y,z축상의 자유로움이 부분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며, 곧 시선의 자유로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슬처럼 불규칙적인 블록 형태의 공간을 대략적으로 만들어보았다.
블록을 밟고 올라가다가 어딘가에 멈춰서서 책을 볼 수도 있고, 안으로 들어가서 나만의 공간을 만끽할 수도 있는 느낌의 구조를 만들었다. 윤슬의 자유로운 구조를 책 공간과 계단의 기능에 맞춰 본 것이다.
교수님께선 이걸 보시더니 갑자기 뒤집으셨다. 반대쪽 공간을 활용한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동의가 되었다. 계단 반대쪽을 활용한다면 기존과는 다르게 아늑한, 색다른 공간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사람들믄 계단 밑에서 탁 트인 시선과 대비되는 닫힌, 낮은 시선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300×300의 블록들이 모여 태어나는 공간은 책장으로도, 수납장으로도 쓰일 수 있기에 실용적 측면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재밌는 '오르는 공간'. 이번 공간의 첫번째 핵심이 되는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공간을 본격적으로 계획하였다.
먼저 그림으로 구상하는 것 보단, 모형을 만들어 내가 원하던 공간이 맞는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1/30모형에 쓰일 10x10정육면체를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장난감 조립하듯이 하나하나 붙여나가며 내가 원하던 공간을 만들어보았다.
테스트해 보았던 '오르는 공간'은 만족스러웠다. 계단 면의 역동성과 반대편의 아늑한 매력이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몇몇 계단은 사람이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폭을 넓게 하였다. 나아가 계단 위엔 기존에 기획했던 테라스, 그 옆에 나무와 인접한 공간엔 한옥의 대청마루와 같은 '지붕이 있는 외부공간'을 새로이 만들어 보았다. 계단이 있는 공간에선 볼 수 없는 것들(등산로, 놀이터, 외부인, 지붕 밑 광경)이 보이도록 하였으며, 또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유도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고민거리가 떠오르게 된다. 이 공간의 대략적 위치는 D3~D5, E1~E2로 열람실3의 1/4정도로 결정했지만, 열람실과 내가 만드는 공간 간의 구체적인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접합되는지, 어떻게 통하게 할 것인지 등등.
우선 이 공간을 포함한 열람실3엔 안팎의 구분을 두기로 했다. 처음엔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려 했으나, 여러 현실적 이유로 구분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이 결정은 결론적으로 공간에 흥미를 더한 요소가 되었다. 안팎을 드나들 수 있는 통로, 나아가 공간과 공간을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며 공간구조가 2~3단계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테라스까지 가기 위한 한 방법으로는 내부의 계단을 거쳐, 계단 뒤쪽의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 또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있다. 여러 단계를 통해 특정 공간에 도달할 수 있고, 그 과정은 다양하기에, 사람들은 똑같은 공간을 향하더라도 계속해서 다른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는 곧 공간을 다양하고 넓게 활용하는 것이라 여겼다.
다음으론 기존의 열람실3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 공간'이 어떻게 느껴질지를 고민해봤다.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 처음 든 생각이었다. 기존의 공간은 지금처럼 사람들이 방해받고 않고 책을 읽는 공간으로, 내가 만든 새로운 공간은 사람들이 차별화된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아 책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꼈다. D3에 벽 대신 통창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꽉 막힌 공간에서 홀로 있기를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밟히는 것이 많은 걸 선호할 수도 있다. 창문이 나있긴 하지만 3면이 벽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온갖 방식으로 앉거나, 서있거나, 책을 읽거나 토론하는 광경을 마주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서 또다른 선택지로 작용할 수 있다. 오히려 '높은 천장'과 같이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외부환경을 보며 생각을 비울 수도, 집중이 흐트러질 때엔 자신과 같이 집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다. 또 바깥 공기를 쐬고싶다면 언제든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하거나 외부에서 작업을 해도 된다는 점을 알리는 표시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 그곳에 없다면 없는대로 하나의 흥미로운 지형지물로써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사람들이 열람실3에 가로지르는 통로에도 이를 고려하여 창문을 내었다. 그 위로는 눈높이 위에서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통로와 실외로 향하는 문을 내었고, 바로 아래론 앞서 언급한 아늑한 분위기의 '계단 밑' 공간이 펼쳐진다. 따라서 열람실3으로 발을 들이는 사람들은 역동적이고 다양한 공간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위의 2가지 고민을 해결하고, 구체적으로 공간을 계획한 후, 모형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3개의 단면도, 축측투상도, 평면도를 그렸다
건축물의 전반적인 형태는 위와 같다.
위의 이미지들은 사람의 시선에 맞춰 나만의 책공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이 공간에 찾아왔을 때,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내가 설계한 공간은 단면 상에서 다양성이 가장 잘 표현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 3개의 단면도를 그려보았다. 단면도1,2,3 순으로 각각 D3,D4,D5부근이다. 계단 구조물을 이루는 300×300정육면체는 언급한 대로 책장, 수납장 혹은 창호로 대체되며 실용성, 책 공간으로써의 정체성, 안팎 간의 상호작용의 역할 등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단면도에서 독서 뿐만이 아닌, 산책, 토론, 눕기, 나아가 책을 소재로 한 소규모 강연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평면도는 열람실3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위치는 어디인지를 간단히 표현하고자 그린 것으로, 공간에 대한 상세한 정보전달은 단면도의 몫으로 넘어갔다.
축측투상도는 단면도와 평면도로 전하지 못한 공간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그렸다. 하나의 형태로 뭉쳐있으면 공간의 여러 부속품을 확인할 수 없어 크게 5개의 세부 공간으로 구분하였고, 화살표로 이들의 관계를 표현했다. 해당 공간의 공간구조를 설명하고자 한 의도도 있다.
이로써 '책 공간'이 탄생했다. 도서관의 공공성을 염두에 두어 하나에 집중하기보단 다양한 성격을 갖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시선'을 키워드로 공간 상에서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곧 공간의 다양성을 이루어낸다 보았고, 이를 충족시키는 책 공간을 설계하고자 하였다.
교수님의 피드백은 다음과 같았다: 좋은 발표는 말이 필요 없을정도로 모형과 도면으로 설명이 되는 발표다. 너무 많은 것을 챙기려 하기보단 적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피드백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발표 대한 피드백이 주를 이뤘지만, 난 내 공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그것이 모형과 도면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인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꽤 지난 이후, 어쩌다가 한 학술 포럼에 참여하게 되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건축에선 독자를 고려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만의 공간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건축이다. 나의 생각을 구현해내는 것을 넘어, 그것을 그 누군가에게 어필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리뷰에서 내가 배우는 것은 바로 이 '독자를 고려하는 법'이 아닐까? 이와 같은 큰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상대방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걸러내고 갈고 닦아 최대한 정제된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좋은 발표이자 프로덕션이란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모형과 도면에도 독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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