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한 나무를 전체적인 모습과 부분적인 모습으로 나누어 그렸다. 나무 껍질에서 패턴을 찾아볼 수 없는 불규칙한 갈라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발표하였는데, 패턴을 찾아볼 수 없는 불규칙도 하나의 규칙이 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깊었다.
나무와 나무껍질을 그린 그림에서의 시선을 더욱 확장시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시선에서의 나무를 그렸다. 현미경으로 보이는 매우 미시적 시선에서부터, 달에서 나무를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일지를 상상하여 지구 그림을 그렸다. 지구 그림은 나무에만 너무 집중하여 마치 고깔을 쓴 듯이 대상을 보고 있던 나의 시선을 환기해주는 그림이다.
우아하게 물 위를 유영하는 백조가 물 아래에서는 열심히 발을 휘젓고 있듯이, 평소에는 땅 아래에 있어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드러내는 그림을 그려 꽤나 아름답게 보이는 나뭇가지의 모습과 무작위적으로 얼기설기 뻗어나가 있는 뿌리를 대비하는 그림을 그렸다.
두 그림은 위의 나무 그림을 바탕으로 각각 나뭇가지와 뿌리의 대비를 표현한 그림이다. 나뭇가지들은 태양빛을 최대한 받기 위해 겹침 없이 뻗어나간다. 하지만 뿌리는 서로 유기적으로, 복잡한 모양으로 얽혀있다. 이는 개체 간에도 적용되며, 심지어는 영양분과 정보도 균근망을 거쳐 뿌리에서 뿌리로 주고받는다. 가지와 뿌리는 줄기를 기준으로 위 아래로 뻗어나가는 대칭이 있지만, 그 기능에 따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특성이 흥미로웠다.
나무는 인간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지금까지 지구를 뒤덮고 있다. 나무 줄기를 도넛처럼, 시작과 끝의 지점을 유추할 수 없도록 원형으로 연결하 연결하여 나무라는 개체의 영속성과 성장-번식-죽음 의 사이클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였다.
튀르키예에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빠르게 스케치하였다. 나무만 채색을 하여 일상 속에서도 인간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나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나무를 언제 처음 그렸을까? 라는 질문을 떠올린다면 모든 사람들은 유년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미취학아동일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그려온 나무를 대학생이 되어 다양한 시선에서 보고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림을 하나하나 그려가고 있는 것이 감회가 새로워서 어린이집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나무를 그려보았다.
바나나는 식물의 열매이고,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에 나무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의문이 들어 두 그림을 그렸다. 영국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는 물리학을 제외한 과학은 우표 수집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근간과 특성을 찾고 분류하는 인간의 과학적 분류 체계는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바나나와 사과를 똑같은 과일로 치부하고, 대나무와 야자나무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나무로 간주된다. 대나무는 사실 식물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완 달리, 마치 우표수집놀이에 몰두한 아이의 말을 들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무와 나무가 아닌 것의 경계가 무뎌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과를 먹고 자란 나는 나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적어도 한때 나무였던 것들이 내 몸을 구성하고 있지 않은가?
스튜디오 중간 발표를 통해 받은 영감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기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무라는 동일한 주제가 무색하게 동기들의 그림과 이야기는 전부 그 개성을 알아볼 만큼 달랐다. 내가 보고 그린 나무들도 사실은 나의 뇌가 만들어낸 내 머릿속에서의 이미지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기점으로 나는 나무에 대한 나의 추상적인 생각을 그림에 담고자 하였다. 아래의 그림들은 나무와 나의 경계에 대한 초현실적이도 추상적인 그림들, 그리고 시각 외에도 청각과 후각을 통해 본 나무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그림들이다.
추상적인 나의 생각들을 표현하여 구체화 해본 결과, 나무를 떠올렸을 때 복합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들과 감각들을 종합해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그 그림자,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등이 내가 생각하기에 나무에서 가장 나무다운 요소라고 생각했으며, 가장 먼저 이들이 떠올랐다. 코모레비 라는 일본어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의미한다. 위 그림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통해 반짝이는 햇빛을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나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는, 그리고 그 의미가 과제 2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그림이다. 나무를 관찰하고 표현하여 옮긴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나무와 세상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요소를 그림으로써 나무의 경계를 확장한 것이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도 나무가 될 수 있고, 나무를 통과하는 햇빛도 나무가 될 수 있다. 나무를 떠올렸을 때 이제의 나는 오직 나무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닌 나무와 세상의 어우러짐, 즉, 세상에 스며들어 있는 나무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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