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과제에서 얻은 모티프를 조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이번 과제의 목적이라고 여겼다. 나의 경우엔 솔방울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난 이전 과제에서 이미 솔방울을 모티브로 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과 같다. 고로 처음엔 이번 과제를 이것을 모형으로 옮기는 과정으로만 대했다.
그렇기에 솔방울 비늘과 비슷한 형상을 50 X 50 크래프트지로 접어냈고, 이를 하나의 유닛으로 삼아 여러 시도를 하며 결합해보았다.
그러나 솔방울 비늘과 흡사한 유닛을 어떤 방식으로 붙여 보아도 솔방울의 성질을 가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복잡한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회전시키고 쌓아올려서 위의 스케치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나, 솔방울에서 내가 발견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관찰을 통해 내가 솔방울에서 발견한 솔방울의 성질, 모티브 스케치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솔방울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시작과 끝, 연속성, 곡선의 형태. 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솔방울의 미묘함이다. 비늘마다의 크기과 각도, 위치와 접합,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패턴의 미묘함. 이 미묘함을 동일한 유닛으로 이루어진 형상으로 표현하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유닛에 변주를 줘 보라는 교수님의 피드백이 있었다.
그렇기에 유닛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눈치채기 힘들게 바뀌지만 가끔씩 본질적인 변화를 겪기도 하는 입체도형을 유닛으로 삼았다. 시작은 사다리꼴 옆면의 기둥형 입체도형이지만 각 변의 길이를 바꿔 삼각형으로 만들기도 하고, 없던 면을 만들기도 하고, 면적을 키워가기도 하며 유닛 그 자체에 솔방울의 미묘함을 반영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유닛의 형태는 그것이 접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조형이 되었을 때, 솔방울의 성격을 연상시키도록 의도되었다. 연속적으로 보이도록 유닛의 크기와 접합하는 각도를 서서히 바꿨고 곡선을 가지도록 접합했을 때 직각이거나 각진 부분을 최소화했으며 시작과 끝이 보이도록 조형의 시작하고 끝나는 위치에 상하로 차등을 두어 그것을 포착하기에 용이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모든 유닛을 서로 붙히니 이와 같은 형상을 띠게 되었다.
의도치 않은 부분도, 의도한 부분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 조형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실행에 옮겼고, 그 결과, 나름의 계산대로 연속적이고 곡선을 지니며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는 조형물이 탄생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표현이 되었다 생각되어 만족스러웠다.
이번 과제는 이전 과제와 다르게 명확한 의도를 갖고 시작했다. 다르게 말하면, 난 어느 정도의 답을 정해두고 있었다. 유닛을 바꾸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래서 과제를 하는 내내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건축은 이미 내린 답을 역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과제를 하면서 이따금씩 내가 내린 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명확한 의도 없이 많은 입체를 만들어보고, 색다르게 결합해보고, 맘에 드는 형상을 찾고 고민해보는 과정이 내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을 가벼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답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오히려 생각을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과제를 하면서 타협했다는 점 또한 아쉬웠다. 처음 보인 몇몇 접합은 단순히 만들기가 어려워 포기한 것들도 더러 있다. 또한 동일한 유닛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미묘함을 표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빠르게 나의 첫 유닛을 포기했다. 내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인내심과 끈기가 더 있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