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로서 본인의 집을 짓는다면 어떨까. 건축학도라면 한 번쯤 꿈꾸며, 현실의 수많은 장벽을 마주하곤 이내 순진한 소망으로 느껴지는 목표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더 의미깊은 이유였다. 교수의 지도 하에 거주자는 '미래의 나 자신'이 되었다. 다만 그 시기가 중요했다. 10년 후인지, 20년 후인지, 혹은 40년 후인지에 따라 같은 사람이 살아도 집은 달라져야 했다. 필자는 20년 후로 결정했다. 그 때가 되면 나름 노련한 건축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숫저운 소망과, 중년의 삶을 들여다 보고픈 호기심이 동기였다.
평소 조부모님과 이웃 동네에 살며,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20년 후의 필자 역시 부모님과 가깝게 삶을 공유하며 살고 싶었다. 더불어 결혼하여 10대 초반의 여아가 있을 거라 가정했고, 자연스레 거주 페르소나는 3대(代)를 이루게 되었다. 페르소나를 바탕으로 주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두었던 주안점은 '소통과 휴식'이다. 3대가 함께 사는 만큼 서로 유익한 소통을 이루어내면서도, 개인의 삶이 방해받지 않도록 소통과 휴식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모와 자녀 가정(이하 '자녀 세대')으로서 3대가 사는 집은 가구별로 영역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고령에 접어들며 집에 머무르시는 시간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부모님 공간은 겨울까지 충분한 채광과 답답하지 않은 조망이 필요했고, 가급적 1층에 모든 공간이 펼쳐져 있어야 이동하시기 편하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조망과 채광 두 측면에서 모두 우수한 도로측 면을 부모님 공간(파랑)으로 설정했다. 자연스레 나머지 절반은 자녀 가정이 활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뒤에 위치한 고층 건물로 인해 자녀 세대 공간(연분홍)은 일조량이 부족했다. 결국 해당 공간의 1층은 주차장과 마당으로 비워내되, 해당 공간의 2층과 부모님 공간의 2층을 자녀 세대가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즉, 자녀 세대 공간이 부모님 공간 위에 떠 있는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다. 필자와 배우자가 맞벌이 부부라는 설정 아래 10대 초반의 자녀는 평일 오후에 혼자 남겨질 것이라 예측했다. 따라서 자녀가 해당 시간에 조부모님(필자의 부모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거실(적갈색)을 공유하고자 했다. 매스는 자연스레 공유거실을 중심으로 두 영역(파랑 & 연분홍)이 만나는 구조를 이루었다. 집에서 가장 활성화되는 공간인 거실이 두 영역 사이에 존재한다면 채광과 공원을 향한 조망을 얻지 못했다. 따라서 전체 매스를 사선으로 꺾어 들어가며 공유 거실에서 채광과 조망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거실이 공유거실 하나만 존재한다면 세대별로 서로에 대한 부담이 증가할 우려가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3대가 같이 모였을 때 서로를 신경쓰느라 편히 휴식을 취하기 힘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구별로 모일 수 있는 공적 영역을 추가하면서 세대 간에 나타날 수 있는 긴장감을 완화하려 했다. 공유 거실을 1.5층에 위치하도록 만들고, 그 아래로는 부모님 거실을, 옆으로는 자녀 세대 거실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스킵플로어가 쓰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수직적 세대 연결이다. 1층은 부모님 공간이 주를 이루는 반면, 2층은 자녀 세대 공간이 그러하다. 따라서 세대를 수직적으로 연결할 매개체가 필요했다. 특히 부모님 공간 천장의 절반 가량은 공유 거실에 가로막히지 않고 뚫려 있다. 그리하여 모든 세대가 이 곳을 중심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둘째는 보행자 시선 차단이다. 공유거실에서 공원을 향한 조망은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공유 거실이 1층 레벨에 위치하면 보행자 시선에 거실이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지상에서 1.5m를 띄워 보행자 시선을 차단하고 공원 조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반 층 높인 곳에서 공유 거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그대로 공유 거실의 앞마당이 되어 다양한 야외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그로 인해 생기는 공유거실 아래의 공간은 중심벽을 기준으로 공유 오피스와 부모님 거실로 나누었다.
평소 글쓰는 일을 좋아하기에 20년 후에도 이를 부업으로 삼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로, 또는 건축비평가로서 활동하기 위해선 잡지팀이나 관련 동료들을 불러 모을 장소가 필요하다. 대학생 잡지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며, 회의를 할 장소가 항상 마땅치 않았다. 추후에 더 큰 규모의 집단과 생각을 공유하고 글을 쓰려면, 회의실의 존재는 더욱 중요했다. 따라서 공유 오피스를 공유 거실 마당 아래에 배치했다. 회의실로 향하는 계단과 출입구를 따로 두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분리했다. 더불어 계단과 입구 사이의 거리를 넓혀 선큰 가든(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개방된 공간에 꾸민 정원)을 만들었다. 회의실과 도로 사이에 위치한 이 공간은, 땅 밑으로 반쯤 몸을 숨긴 회의실에 채광을 유입하는 동시에 회의실을 사용하는 이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도로 너머 펼쳐진 간데메 공원과 선큰 가든의 잎파리들은 자연을 매개체로 하나되어 숨쉰다. 빼곡한 기능으로 작동하는 공간들 사이에 '여백'을 만듦으로써 얻게 된 것들이다.
입면과 마감재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전체적으로 3개의 매스가 결합된 형태였기에 각각을 살려 리듬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인상을 주길 원했다. 공유 거실 매스(주홍)는 앞뒤 모두 통창으로 구성되어 별 다른 장치가 없어도 경쾌한 모습을 띄었다. 따라서 Sleek Concrete - Buff 텍스쳐(도판 20)를 사용해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공유거실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나머지 두 매스는 공유 거실 매스의 가벼운 느낌을 완화해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길 원했다. 따라서 Porcelain 타일 중 하나(도판 21)를 사용하여 앞의 매스(파랑)을 마감하고, 뒤쪽 매스는 청고 벽돌(도판 22)을 활용했다. 다음은 설계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다.
다음은 패널과 라이노로 제작한 목업, 최종 모형 사진이다.
도판 출처) 도판 1-19,23-31 | 자체 제작 도판 20 | https://anthonyconcretedesign.com 도판 21 | http://www.emotionceramic.co.kr 도판 22 | https://hanabric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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