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최소의 집에 어울리는 클라이언트는 15년 후 건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나'와 사업 파트너인 '소울 메이트'로 설정했다. 출근하면 비즈니스 관계였던 사람이 퇴근하면 동거인이자 소울 메이트가 되는 관계성 전환을 주택에 담을 수만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집주인인 '나'와 임대 공간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파트너'를 무대 위에 먼저 세우고 그 캐릭터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내향적이고 외부와의 적절한 단절감을 필요로 하는 '나'와 외향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파트너' 간의 양극단적으로 설정된 성향에 칵테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행위를 더함으로써,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일상을 나누는 공간을 형상화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주택 설계에 앞서 이 주택에서 내가 꼭 가져가야 할 공간은 무엇인가를 먼저 정리해나갔다. 두 명의 차를 감당할 공간이 필요할 것은 물론 땅값 비싼 서울에서 마련된 온전한 내 땅에서 잠깐 피부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테라스, 이 주택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공유 주방이자 라운지가 필요할 것이다. 크게 3가지의 설계 포인트를 나름 지정을 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가는 과정이 계속 되었다. 이 방식은 빨리 방향을 잡아 명확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다소 재미가 없거나 틀에 갇혀버리는 사고를 하게 되는 단점 또한 갖고 있다.
먼저 매스 모형을 만들어 가면서 어떤 '덩어리'를 어디에 둘지, 사이트에서 어느 부분을 차지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본격적인 주택 설계가 시작되었다. 내가 채택한 site B는 주택의 세 면이 도로와 맞닿아 있으며 나머지 한 면은 옆 건물과 등지고 있는 환경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외부인의 시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중점으로 매스 스터디를 진행하였다. 외부인의 시선이 닿는 공간부터 온전한 나만의 공간까지 모든 것을 갖추기는 쉽지 않았으나 이는 자연스럽게 중정의 존재 유무를 결정지었다. 2채의 건물이 사이트의 중앙을 감싸는 구조는 중정이 생겨나기 좋은 환경을 형성했다. 이에 따라 중정을 기준으로 한 쪽에는 주거 공간이, 나머지 한 쪽에는 공유 라운지가 위치하게 되었다.
이 다음 단계로는 주택의 실거주자, 즉 나와 파트너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시작됐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우리'의 평면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도중에 둘에게 완전히 같은 평면을 제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잠깐의 궁금증이 끼어들긴 했으나 각자의 취향을 한껏 담은 평면을 구성하자라는 결론을 지었다.
먼저 1층 집에 거주하는 '나'의 평면은 침실에 가장 무게를 두었다. 주택의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자칫 답답한 인상을 주진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단절감과 안락함을 동시에 느끼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침실에서 나오면 왼쪽에 작은 창이 있어 바깥의 날씨는 어떤지와 같은 가벼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맞은 편엔 화장실이 있는데 건식 세면대를 두어 욕실과 세면실을 구분하였다. 복도 끝엔 자그마한 거실이 펼쳐지는데 주택의 중정이 한 눈에 보이는 통유리와 TV를 볼 수 있는 작은 쇼파가 있다. 한 쪽 끝에는 라운지로 향하는 계단실이 위치해있다. 계단실은 주택에서 또 다른 포인트이기에 뒷부분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하겠다. 1층에는 '나'의 공간뿐만 아니라 공유 오피스이자 공동 현관이 있다. 이 공간은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2명의 건축가가 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집으로의 입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주택의 첫 공간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중정을 거쳐 들어와 땅에서 두 계단을 밟고 내려와서야 시작된다. 회의실을 연상케 하는 긴 테이블과 스크린은 사무실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나 집에서 쉬다 갑자기 회의해야 할 경우 요긴하게 쓰인다. 이 곳에는 1층 집과 2층 집 모두가 연결된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나의 파트너 집이 나온다. 현관을 지나 중문을 열면 중정과 테라스가 연결된 뻥 뚫린 내부가 파트너를 맞이한다. 나의 평면과는 다르게 원룸식의 평면은 파트너의 취향과 경쾌함을 가득 담고 있다. 화장실 옆에는 자그마한 테라스가 있어 리프레시와 긴장감을 동시에 준다. 침실은 방 안에 두기 보다는 거실을 가리는 파티션을 두어 답답하지 않은 구성을 하였고 큰 거실에는 파트너만을 위한 작은 서재와 바로 옆에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을 마련했다. 그 앞에 있는 메인 테라스는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 혼자만의 작은 캠핑을 즐길 수 있다. 2층 집 또한 라운지로 향하는 계단실이 존재한다. 사실 두 명의 집에는 식사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에 두고 쇼파에 앉아 식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조리를 하거나 식사를 하는 공간은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공유 라운지에 있다. 먼저 공유 라운지로 가기 위해서는 1층 집과 2층 집 모두 계단실을 이용해야 한다. 주택의 입면을 보면 공유 라운지와 2층 집은 같은 높이 선상에 있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1층의 주차장의 층고는 주택의 3m보다 낮은 2,2m이다. 따라서 공유 라운지는 2층 집보다 낮은 평면이다. 이에 따라 계단실이라는 공유 공간이 형성된다. 즉 '나'와 '파트너'는 공유 오피스이자 현관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하지만 라운지를 가기 위해서는 공유된 계단실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행위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벽면을 과감하게 통유리로 채우고 천장 슬라브를 없애 완전히 공유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따로였던 우리가 함께가 되는 곳이 바로 계단인 것이다. 공유 라운지에서는 주방 및 펜트리로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식사 공간이 있다. 주방은 마침 남향에 해당하기에 일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측창을 두었다. 한 쪽에는 두 명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칵테일 바가 있다. 한 쪽에는 화장실과 현관이 있고 이 현관을 통해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주택은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두 사람이 따로 살지만 함께 지낼 수 있는 '모드 전환'의 공간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땅에서 두 칸 내려가 있는 공유 오피스와 현관이 각자의 주택을 열어주고 공유된 계단실을 통해 라운지에서 친구로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인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조혜원의 저작물인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uosarch.ac.kr., Some rights reserved.
고장 및 불편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