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빌리온을 만들기 위해 고려한 목표 두 가지가 있다. 1차 과제의 계승과 3차 과제의 고유성. 우선 1차 과제의 계승을 이야기해보자. 이전 과제에서 사용하던 작품의 외형을 유사하게 표현하는 것에 집착하다 '계승'이 아닌 '복제'가 될 위험성이 존재했다. 따라서 명확한 논리를 갖추면서도 유연한 '계승'을 위해 단위체의 특성을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했다. 1차 과제에서 사용하던 단위체의 특징을 정리했다. 단위체는 가장 큰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방향성'이다. 사진에서 화살표로 표현한 것과 같이 일종의 '돛단배' 모양 2개가 꼭짓점을 통해 서로 다른 방향을 명확히 가리킨다. 이 특성을 살리기 위해 1차 과제에서 단위체를 이어 붙여 나선형의 중간 단위체를 제작했다. 이번 과제에서도 선형적인 모형으로 파빌리온을 제작하고자 했다. 단위체가 연속된 한 줄로만 모든 파빌리온의 벽과 천장을 구획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방향성의 흐름이 명쾌하게 표현된다.
다만 방향성을 의도하는 과정에서 방향성 인식의 주체를 반대로 바꾸었다. 1차 과제에선 건축물보다 작품의 개념이 짙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중요했다. 하지만 3차 과제 <파빌리온>으로 넘어 오며 조형적인 개성이 강하던 작품에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에 따라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관점이 중요해졌다. 결국 방향성이 애초에 규정된 '작가'의 의도에서 정면이 특별히 설정되지 않은 '사용자'의 의도로 바뀌었다. 본 파빌리온 모형은 네 입면 모두 각기 다른 형태를 갖춘다. 해당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그 특징은 더욱 증폭되어 시야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이는 사용자가 정해진 형식의 관람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고려한 결과이다. 편하게 접근해서 각자의 해석과 인상대로 공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파빌리온. 머릿속으로 그리던 이상에 부합하던 결과물이었다.
단위체의 두 번째 특징, 단위체 사이 틈이다. 단위체를 구상하던 당시, 종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접히고 틈이 벌어지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단위체 사이로 두 개의 작은 틈이 벌어졌고 이 자체가 고유한 매력을 가졌다. 3차 과제에 이르러 이 특성을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벽과 천장의 구분이 애매한 구조물 사이로 발생한 틈은 빛을 들여보내기도, 자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작은 창이 되기도 한다. 사용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동시에, 중간중간 선명히 들어오는 빛과 자연의 풍경은 또 하나의 영감이 된다. 면으로 막혀있다 갑자기 트이는 구멍은 자연을 받아들이는 사용자의 인상을 극대화시킨다.
그렇다면 3제 과제에서 고유하게 발전된 점은 무엇일까. 구조 보강과 모듈을 활용한 가구가 이에 해당한다. 첫째, 구조 보강이라는 숙제가 새롭게 생겼다. 파빌리온의 1차 모형은 위를 가로지르는 구조물의 하중으로 인해 처지는 문제가 있었다. 기둥과 와이어를 해결책으로 고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위체로만 이루어진 구조물에 새로운 재료가 도입되면서 발생할 이질감이 우려되었다. 따라서 단위체의 한 면에 해당하는 이등변삼각형을 활용했다. 다만 기존의 면이 채워져 있는 삼각형 모듈을 온전히 활용하는 대신, 프레임만을 살렸다. 단위체가 한 줄로만 이어져 구조물을 완성한다는 특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구조 부재의 존재감을 최대한 약화시킨 결과였다. 그리하여 최종모형은 의도한 '한 줄의 방향성'을 살리면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둘째, 모듈을 활용해 가구를 제작했다. 본 모형은 바닥과 가구가 모두 한 모듈로만 표현되어 구조물과 가구의 경계가 유연하다. 다만 모듈의 크기와 형태에 변주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였다. 초기 구상 당시 소프트한 재질의 가구를 제작해 구조물의 날카로운 인상을 완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프트하단 건 그만큼 섬세한 표현을 요했기 때문에, 섬세한 가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수 번 어려움에 직면했다. 결국 기존 모듈을 활용해 가구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그 결과 가구와 구조물 사이에 재료와 형태적 통일성이 부여되었다. 또한 구조물이 바닥에 접합하는 면으로부터 모듈이 연장되어 최종적으로 가구가 되도록 의도했다. 그리하여 구조물과 가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독특한 공간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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