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다는 것
조채영
처음 1:1 도면을 위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도면을 받았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은 그저 ‘도면’라는 감상이었다. 건축가들에게 ‘도면’이 보자마자 바로 그 공간감이 느껴지는 정도의 개념이라면, 내가 받은 느낌은 ‘도면’에 미치지 못하는 그저 익숙치 않은 종이를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도면 위의 선들이 공간으로 보이기보단 분리된 선들의 집합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도면을 종이에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벽까지 다 그리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그리고 있는 것일까. 벽까지는 최소한 벽이라는 인지를 한 후에 그리고 있었으나 그 이후의 요소들은 그저 따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도면 그리기를 멈추었다. 그리곤 이 과제로 하여금 내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1:1 도면은 도면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이를 실제 스케일로 그려봄으로써 공간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을 기르기 위한 과제이다. 도면이 투박한 그림이 아닌 공간에 대한 정보들로 받아들여지는 연습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를 자각한 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대해 학습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다양한 이미지와 VR을 활용하여 도면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유리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기둥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에 대한 이해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공간적 특징과 결부될 때, 그 공간감이 극대화됨을 경험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자유로운 구성과 흐르는 공간이다.
규칙적인 8개의 기둥과 자유로운 벽의 배열이 동시에 존재한다. 미스는 “자유로운 평면과 명쾌한 구조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다.”라고 밝히며 “자유로운 평면은 관습적인 평면만큼이나 건축가로부터 규율과 이해를 요구한다.1)”라고 하였다. 즉, 자유로운 평면처럼 보이지만 결국 구조적으로 어느 정도 규칙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하나의 예를 들자면, 전체 경계를 나타내는 벽은 바닥 모듈선과 일치하며 그 밖의 벽은 그 중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흐르는 공간을 특징으로 갖는다. 철 기둥과 수직의 벽, 수평의 지붕으로, 다양한 재료들의 독립적인 평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을 나누어 한정하기보다는 특정 방향으로 향하게끔 배치되어 있다. 벽에 의해 폐쇄된 공간이 없어 내외부가 연결되어 있고, 지붕, 바닥, 벽은 각기 다른 재료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 요소 내에서는 재료의 연속성을 띈다.
위의 두 가지 특징을 도면을 그리면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기둥, 유리, 가구 등을 그릴 때 수치에 의존했다면, 나중에는 가장 큰 골격을 인지하고 그 안의 타일이 의미하는 그리드(규격)에 의존하여 공간을 채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불규칙해 보이는 벽들도 결국 그리드 위에서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두 번째 특징은 1:1 도면을 그리면서 경험할 수 있었다. 1:1 도면이 그려진 천 위에 서서 벽과 유리를 따라, 또는 눈앞의 매스들을 지나 움직이다 보면, 스스로가 일정 방향으로 하여금 이동하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다. 나는 이 과제를 통해 보고, 상상하고, 그리고 그 공간을 실제 스케일로 느껴봄으로써,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대상으로 여러 감각들을 활용하였다. 그 후 다시 도면을 보니 공간이 보였다. 동시에 ‘선을 긋는 행위’가 단순한 손의 움직임이 아닌 공간을 전달하기 위한 고귀한 행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 문헌
1)이정규, Barcelona Pavilion의 건축 분석(Architectural Analysis of Barcelona Pavilion), 1997, pp.183 -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