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반 데 로에(1886-1969)는 건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건축은 오늘날 우리에게 기념비가 아니라 단지 도구다. 건축은 현실의 조형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법칙을 준수하라. 질서는 조직 이상이다. 조직은 기능 설정이다. 질서는 의미 부여고, 질서와 건축은 이 의미를 공유한다. 질서와 건축은 둘 다 기능을 훨씬 뛰어넘으며, 궁극적으로는 가치를 목표로 한다.”이렇듯 그는 무엇보다 간결성과 실용성을 중시했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실습 시간에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1/100 스케일의 설계도를 그렸다. 평면도, 입면도 그리고 단면도가 이에 해당한다. 나는 프리핸드 스케치로 그릴 때 외벽을 두껍게 그리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제도판을 활용하니 알맞은 두께로 그릴 수 있었다. 원래는 외벽만 0.7cm 제도 샤프로 그리는데 단차가 있는 곳도 두꺼운 선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배치도의 나무와 숲도 그렸다. 나는 설계 도면에 주위 나무들을 반드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무들을 통해 건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위 환경이 어떻게 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단점을 보완하고 유연하게 설계도를 완성했다.
두 번째 실습은 실물 크기의 파빌리온을 강당에 재현하는 것이다. 물론 건물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건물의 일부만 실현했다. 여기선 건설 현장 분위기와 팀워크를 배웠다. 실제 베테랑께서 작업을 도와주셨다. 작업 현장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괜히 나섰다가 작업에 방해된다는 꾸중을 들었다. 여기선 머리 쓰는 사람은 하나면 되고 나머지는 지시 사항에 따라 실수 없이 작업하면 된다. 작업지시자는 절대 계산 실수를 하거나 작업을 번복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고 많은 재료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일이라도 이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짜증 난다.
한편 대리석을 만져볼 수 있었다. 생각한 것과 달리 매우 무거웠다. 나였으면 벽에 검은색 대리석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붕은 흰색이고 바닥의 대리석은 베이지색인데, 벽을 검은색으로 쓰면 시선이 집중된다. 대신 흰색이나 베이지색 계열의 대리석을 고려하겠다. 또한 패턴이 강렬한 대리석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은색 대리석이나 베이지색 대리석이나 마블의 패턴이 너무 강렬하다. 이런 대리석은 고급 주택에 사용하겠다. 그것도 주인이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완강히 원할 때나 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연못과 그 안의 돌이다. 그리고 뒤에 있는 숲도 좋았다. 이를 통해 유기적 건축에 대한 힌트를 보았다. 자연의 재료를 건물에 활용하면서 주위의 자연까지 훼손하지 않고 있다. 안도 타다오도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왜냐하면 ‘산’에도 이와 비슷하게 연못이 있기 때문이다. 연못의 생김새와 마감도 매우 비슷하다. 깔끔한 직선 안에 물과 돌이 담긴 형태다. 이렇듯 자연이 건물을 담고 있는 듯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
프리츠 노이마이어/김영철·김무열 옮김, 꾸밈없는 언어: 미스 반데로에의 건축, 2009년, pp. 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