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2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전경
0. 들어가며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은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 독일관으로 건립된 건축물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설계했으며, 근대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박람회 직후 철거되었으나, 건축사적 의의를 고려해 1986년에 복원되었다.
해당 건축물에 대해 1:100 축척의 도면과 모형을 제작하고, 1:1 도면을 제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작도에 대한 경험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하 ‘파빌리온’)의 디테일, 나아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이하 ‘미스’)의 건축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더했다. 이어지는 글에서 해당 과제를 통해 가진 경험과 생각을 엮어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진3, 4 위계가 표현된 1:100 축척 도면
1. 도면을 작도하며
수 년 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기에 도면으로 공간을 읽는 법은 나름대로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하며 '위계'의 개념을 처음 접했다. 선이 명확히 표시되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과거와 달리, 선의 강조와 굵기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축선의 설정과 위계 표시에 주의를 기울였다. 1:100 축척, 1:1 축척의 도면 작도 활동 모두에서 절실히 느낀 것은 축선 설정의 중요성이다. 백지 위에 처음 설정하는 축선으로 인해 추후 작도의 전 과정의 운명이 결정된다. 1:1도면을 그리며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1mm의 오차도 모이면 선이 올곧지 못하고 도면 전체의 완성도가 크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축선이 2mm 정도의 오차를 가졌던 경우가 있는데, 그 축선에 맞추어 나머지 부분을 작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외벽 하나 전체를 잘못 그려 노력이 물거품되곤 했다.
사진5, 6 1:1 도면 제작 현장
또한 1:1 도면 작도의 과정에서 규모에 놀라움을 느꼈다. 1:100 도면과 모형을 제작할 때, 실제 이 공간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를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 규모와 동일하게 도면을 작도하는 과정에서 공간의 크기를 평면으로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축소된 축척의 도면과 VR기기, 각종 이미지를 통해서는 실제 규모를 제대로 느끼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도구를 사용하는 법도 익혔다. 스케일 자를 구매하며 일반 자가 있음에도 과연 유용하게 쓰일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과정에서 스케일이 얼마나 많은 계산의 과정을 줄여주고 편리함을 증가시키는지 깨달았다.
사진7, 8 도면의 타일
2. ‘파빌리온’의 디테일
도면을 작도하며, ‘파빌리온’의 구조와 디테일에 감탄했다. 우선 타일이다. 해당 건축물은 모든 바닥에 1m 정방형 타일이 깔려 있다. 덕분에 타일의 규격에 맞춰 한결 수월하게 작도했다. 혹시 ‘미스’가 타일을 통해 ‘파빌리온’에 수적인 질서를 확립하려 하지 않았을까. 해당 내용을 전문 자료에서 찾아보긴 힘들었지만, 만일 그렇다면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붕의 끝 선, 벤치 벽 타일의 줄눈, 바닥의 타일 줄눈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아 비대칭의 건축물에게 질서를 부여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지 추측해 보았다.
‘파빌리온’의 도면을 이해하며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점은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전시의 목적이므로 밀폐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고 넘어갔지만, 해당 구조가 건축사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추후 알게 되었다. 경계가 정해지지 않은 공간의 흐름은 해당 건축물에서 벽과 지붕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서 표현된다. 지붕으로 덮여 있는 공간에서 벽면은 외부 공간과 다방향으로 얽히고, 이 공간은 벤치가 있는 기다란 독립벽으로 이어져 무한히 확장된다. 또한 전시실 안쪽 수공간 위까지 지붕이 이어지지 않아 해당 공간을 외부로 만든다. 이처럼 벽면과 지붕의 연장, 혹은 단절을 통해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그 사이에 흐름을 유도했다. ‘Flowing space’의 개념은 라이트[1] 와 베를라헤[2] 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보지만[3] , 그 개념의 꽃을 피운 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9, 10 도면에 표현한 대리석 벽면과 유리문
이 건축물에서 흥미로웠던 세부 요소는 대리석과 유리문의 디테일이다. 바닥에 장식성을 더하는 요소라고 흔히 여겨지는 대리석을 수직으로 세워 벽의 무늬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여겨졌다. 이는 통상 떠올리던 백색의 건축이나 신 객관주의와 큰 괴리를 보이며, 재료의 감수성이 근대건축의 요점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4] 또한 유리문의 경우에도 단순히 양끝에 경칩이 달려 여닫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위아래로 봉이 설치되어 벽과 문이 만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지속되는 공간의 흐름을 세심하게 표현했다고 본다.
사진11, 12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방문한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3. 미스의 건축을 체감하며
사실 이 건물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갖는지 체감하지 못했는데, 당시 사람들의 의상과 모습을 통해서 시대를 앞서 간 건축물임을 절실히 깨달았다.‘미스’가 근대 건축을 온전히 새로이 열었다고는 하기 힘들다.[5] 그러나 르코르뷔지에의 '돔이노(dom-ino) 이론'과 유사한 free plan, 라이트와 베를라헤 등의 영향을 받은 flowing space, 유리와 철골 노출의 강조를 비롯해 모더니즘의 건축이 지향하는 개념들을 총집합하여 제시함으로써 모더니즘의 시초를 완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마치며
위대한 건축가들을 떠올릴 때면 그들의 '천재성'을 단순히 이해만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을 따라 그리고, 만들고, 느끼며 생각이 한층 깊어졌다. 높이 평가받는 건축가들은 세상에 없던 것을 온전히 천재성으로만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대신 기존의 관습과 한계에 "왜 안돼?"라며 자주 물었던 이들이 아닌가 싶다.
건축의 역사가 깊은 만큼, 수많은 사상과 개념이 떠오르고 충돌하며 빛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인정받는 건축은 세상에 "왜 안돼?"라는 물음을 공통적으로 던졌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시대별 건축의 의미가 아닌, 관습과 한계에 의문을 던지는 태도가 아닐까.
5. 출처
사진)
- 사진1, 2, 11, 12: https://miesbcn.com/the-pavilion/
- 사진6:
https://photos.google.com/share/AF1QipP9Hgu5TNeCq-OzDvkOptnEqUE6uy3CmdvpOcj6D7CRTngnCVYPN16UMp0XFupH8A/photo/AF1QipOa_8I3pg1Kb9zOOgYcQ0H0QjYgnEQHd371l_lU?key=RGpZVmNKVXBUdTNudlFpZnhpVGtkSDljcHdaSUZB
참고 자료)
- 김현섭, 강태웅, 건축물로 읽는 서양 근대건축사 건축수업, 2016, pp191~200
- 전남일. (2020). 마틸덴회헤 예술가 마을의 유겐트슈틸 주택 디자인에 관한 연구 -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와 페터 베렌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실내디자인학회 논문집, 29(5), 53-64, 10.14774/JKIID.2020.29.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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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 ~ 1959): 미국의 근대 건축가. 유기적 건축과 대초원 양식을 중시하며 독창적인 디자인을 제시하여 주목받았다. 대표작으로 낙수장(Falling Water)(1939), 로비 하우스(Robie House)(1910),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1959) 등이 있다.
[2] 베를라헤(Hendrik Petrus Berlage, 1856~1934): 네덜란드 근대 건축가. 재료들의 기본 특성을 살리고 장식이 없는 설계로 네덜란드의 근대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런던의 홀랜드 하우스(1934), 헤이그의 시립박물관(1934) 등이 있다.
[3] 김현섭, 강태웅, 건축물로 읽는 서양 근대건축사 건축수업, 2016, pp198~199
[4] 김현섭, 강태웅, 건축물로 읽는 서양 근대건축사 건축수업, 2016, pp193~195
[5] 전남일. (2020). 마틸덴회헤 예술가 마을의 유겐트슈틸 주택 디자인에 관한 연구 -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와 페터 베렌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실내디자인학회 논문집, 29(5), 53-64, 10.14774/JKIID.2020.29.5.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