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1/200 스케일의 캐드 도면으로 처음 접했을 때, 실제 스케일로는 어떨지 감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1/100 스케일로 도면을 작도해보는 프로젝트와 1:1 스케일로 그려보는 경험을 통해서 이 공간에 대한 공간감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을 이해하는 과정 안에서 나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애매한 지붕의 위치와 벽과 유리창의 의도 등이 궁금해졌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기능은 사람들이 잠시 모이는 공공 공간 이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스페인의 여름에는 난방이 필요 없었고,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우수 및 하수 시스템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이 파빌리온을 온전한 건축적 구조와 공간으로 대할 수 있었다. 이 파빌리온은 폐쇄된 공간이 없고 지붕이 이 파빌리온의 중앙부를 덮고 있기에 사람들은 이 파빌리온 공간을 ‘내부’라고 일컫는다. 또한 벽과 공간은 지붕 밑에서 틈새를 구성하면서 서 있기 때문에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이 파빌리온에서 벽은 지붕을 지지하는 구조체가 아니라, 공간을 정의하면서 서 있는 것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벽을 전통적으로 하중을 견뎌야 된다는 개념에서 자유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벽면의 배치를 통해 오브제적인 규범을 갖게 하였다. 재료적인 측면에서는 벽면들이 투명한 재질의 유리창과 불투명한 유리, 다양한 대리석 등의 재료로 구성되어, 전통적인 건축이 사용하던 재료와 거리를 두며 모던함을 강조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VR 가상 체험을 통해서 그 공간에 직접 들어가보는 체험을 해보았을 때와 제도판 위에서 도면을 그리며 이해한 공간의 개념이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에서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어떤 위치에 유리창이 있고, 어떤 위치에 벽과 지붕이 있는지까지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직접 VR 가상 체험을 해봄으로써 그리고 1/100 스케일 도면 위에 모형을 구상해봄으로써 벽과 유리창이 이 파빌리온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스가 의도한 벽은 그저 하중을 견디는 벽일 뿐이 아니라, 벽면으로 공간을 정의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을, 입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미스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전면에 유리창을 만들었는데, 건축물의 외부 공간을 실내로 도입시키는 역할을 하게 만드는 창의 근대적인 기능과 개념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처음으로 실현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새로운 시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파빌리온을 여러 가지 스케일로 이해하고 구상해보면서 하나의 공간이 주는 다양한 공간감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1 도면 그리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1/100 스케일로 종이 위에 작도할 때 간단하게 그렸던 선 하나가 실제 스케일에서는 여러 명의 힘이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협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또한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도면 위의 실제 공간을 상상해보면서 걸어 다녀보았는데, 이 과정은 VR 가상 체험과는 또 다른 경험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VR 가상 체험은 내가 움직이지 않고도 이미 만들어져있는 모든 공간을 시각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면, 1:1 도면 위에서는 바닥에 그려진 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내가 직접 움직여 그 공간을 내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구성해보았다는 것이 스스로 그 파빌리온의 공간감을 익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 작품과 프로젝트 Mies ban der rohe projects 2권 (1927-1929)/우리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