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사회적 생산물 혹은 관계의 산물이며, 사회적 공간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유동적이다. 다시 말해, 공간은 마냥 객관적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힘과 권력을 담지하며 또한 이를 구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성은 도시민의 개인적인 행위와 한 시대의 공동의식 뿐 아니라 시대적 혹은 역사적 공동체적인 행위에 의하여 형성되어 왔다. 도시는 이러한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모습에 대한 공간적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의 공간 구조는 도시민들의 단순한 사회생활의 공간적 배경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과정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극장은 오래 전부터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해왔으며, 극장이 갖는 형태나 규모는 극장이 세워지는 도시 조직 형성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장소적인 의미로 보았을 때, 극장은 구경하는 장소이다. 무대에서 행해지는 공연을 관람하며 즐기는 장소이다. 이 '공연'과 '관람'이라는 두 가지 기능이 가장 기본이 되며 또 주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은 그 안의 모든 예술의 형태를 하나로 모으며, 이 집약적인 전체를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표현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장과 공연은 예술적인 행위로써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사교적인 행위로 생각하며 관람부분의 시설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도 하였고, 건물 그 자체가 무대 못지않게 중요해지기도 하였다.
도시공간의 주택이나 건축물들은 도시민에게 보금자리나 생업을 위한 터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도시공간 자체가 재건축이나 도시개발프로젝트 등을 통해 자본순환이나 자본축적의 장(場)이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나 극장과 같은 상업시설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을 통해 도시공간의 재생산 과정을 지배·통제함으로써 도시공간을 자본축적에 이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비공간으로 재조직하여 궁극적으로 공간의 상품화를 촉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멀티플렉스 공간의 등장으로 영화산업의 중심이 제작에서 상영으로 변화하면서 그 패러다임 역시 생산에서 소비로 바뀌었다. 이처럼 영화산업에서 영화상영, 즉 소비의 단계가 중요해지면서 영화는 상품처럼 경제적 가치로 평가되었고, 이는 영화는 '산업'이며‘비즈니스'라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특히 개봉 당시 확보된 스크린 수가 흥행성패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는 영화산업에 있어서 멀티플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말해준다. 더 나아가 영화관람이 토탈엔터테인먼트 활동으로 변화함과 동시에, 식사하고 커피마시기 등의 활동처럼 일상의 소비행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영화보기가 일상화 되어가면서 관객은 '영화 애호가'라기보다 '영화 소비자'에 가까워졌으며 영화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상품'에 가깝다는 인식 역시 확대되었다.
극장의 소멸과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공간의 획일화를 만들고 무장소성을 만들어낸다. 또, 그 어떤 사회적 관계도 요구하지 않는 공간구조를 지닌 멀티플렉스는 사회적 관계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텍스트와 각종 기호나 이미지를 통해 말끔히 제거한다는 점에서 멀티플렉스 공간은 관객들의 사회적 관계를 구조화한다. 이전 극장들은 극장주들이 달라 저마다 개봉작 선정작도 다르고 선호되는 장르도 다르는 등 개성과 정체성, 특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관의 정체성이나 영화 취향에 따라 극장을 선택했고, 이로써 극장과 관객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맺어졌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는 고유한 정체성이나 역사성 그리고 관계성이 결여되어 있는 '비장소'로써 어떤 멀티플렉스를 가더라도 똑같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기 때문에 관객과의 관계가 성립되지 못한다. 따라서 관객들의 멀티플렉스 선정기준은 영화가 아니라 다른 시설공간이나 공간적 환경이 된다. 이처럼 관객과의 과거를 축적할 시간을 갖지 못한 비장소로서의 멀티플렉스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현재를 끊임없이 갱신함으로써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도시 구성원들과 어떠한 연결고리(기억)도 만들지 못한 채로 도시 속에 존재한다.
해당 프로젝트에서는 극장문화가 번성하던 시기-1980년대 종로 단관극장-의 공간(평면) 분석을 통해 사회적 기능은 유지한 채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공간 배치를 제공한다. '소비'보다는 '소통'을 유도하는 공간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제안된 극장공간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며, 이는 영화의 질적 측면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밝혔던 것처럼 사회적·공간적·도시적 측면에서 현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의 한 조각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1층 평면도를 보면 서쪽 주출입구를 기준으로 북쪽의 코어 공간은 나머지 공간들과 분리되어 존재한다. 이것은 건물이 작동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건물 내부의 수평, 수직적 활동과는 무관하게 이용될 수 있도록 한다. 다음으로 극장공간이 건물 중심에 배치되고 타 상업공간들은 극장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배치한다. 이때 각 실로의 진입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복도가 극장공간과 상업공간 사이에 배치된다. 이 동선은 극장활동을 극장 내부에서만 기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역시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극장공간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서 작동하게끔 한다. 마지막으로 극장 공간을 고정된 벽으로 타 공간들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커튼이라는 유연한 패브릭 소재를 활용하여 극장 내부의 프로그램에 따라 가변적으로 공간을 구획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영화가 상영되는 경우에는 커튼을 닫아 극장 내부에서만 활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세미나 혹은 시사회와 같은 공적이고 큰 규모의 활동이 진행될 경우에는 커튼을 부분적으로 열어 극장 외부에서도 내부의 활동을 관람하거나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유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장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축소되거나 소멸된 경우)에는 커튼을 걷어서 주변 상업시설과의 연계 및 확장을 통해 극장공간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열린 장소로써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계속해서 공간적 변화를 시도해야만 하는 현대사회 멀티플렉스 공간의 숙명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인테리어나 장식적 요소, 내부 프로그램 등의 순간적이고 시각적인 변화가 아닌 구조(structure), 배치와 구획, 재료의 물성 즉, 건축의 무거운 요소로써 풀어냈기 때문에 현대 극장공간의 한계점을 해소하면서도 과거 극장공간의 감수성을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사진 : 한영수문화재단 콜라주 소스 : <시네마 천국>, <녹색 광선>, <매트릭스>, <파벨만스>, <공각기동대>, <베를린 천사의 시>,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 <천공의 성 라퓨타>, <지상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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