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대지, 컨셉, 법률 등 아무것도 제한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어떤 파빌리온이 탄생하는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가지의 다른 생성 원리를 가진 모형을 하나로 결합하는데에서 시작되었던 모형은 하나둘 디테일을 더해가며 건축물로써 기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컨셉과 디자인, 대지, 축척을 더해가자 막연하던 구조물의 모습이 그려지는 시간이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다양한 재료로 모형을 만들어보면서 재료에 따른 건축 구법과 그 효과를 상상할 수 있었고 이를 파빌리온에 반영하여 한 층 더 풍부한 파빌리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파빌리온은 '현실 속에 자리 잡은 초현실'이라는 컨셉을 비틀림과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으로 완성하는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테트리스를 기반으로 하는 모델과 토템을 기반으로 하는 모델을 각각 만들어 기초 유닛의 근본으로 삼았다.
테트리스 모델에서 기초 유닛의 대략적인 형태를 따오고, 토템 모델에서 유닛의 형상 구축 논리를 따왔다.
그렇게 탄생한 기초 유닛은 테트리스의 ㄱ자 유닛에 사각형 구멍이 뚫린 동시에 높이 솟아있는 기둥 부위가 뒤틀려있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기초 유닛을 다양하게 결합하면서 흥미로운 형태를 가진 결합체를 여럿 만들었다. 그 중 가장 재미있는 결과물을 3개 선정하고 각자의 외형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본 딴 이름을 붙여보았다.
이름을 붙인 결합체 중 하나를 선택하여 파빌리온으로 건축화하는 과정은 내부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디지털 모델뿐 아니라 종이 모형, 석고 모형, 3D프린트 모형 등 여러 재료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피지컬 모델을 통해 건축화 과정에서 모델의 어떤 요소를 강조하고 드러낼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내부를 완전히 뻥 뚫고 얇은 벽만 남기는 것으로 'wormhole'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파빌리온을 만들어냈다.
1층에서 시작되는 발걸음은 내부에서 단 2번 꺾이면서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3개의 직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간결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수평으로 움직이는가/수직으로 움직이는가로 구분할 수 있는 각 동선은 사용자의 시선과 동선의 방향이 동일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동시에 각 동선마다 파빌리온 내부의 다른 모습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평면도와 단면도, 입면도를 통해서 파빌리온 내부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기초 유닛 생성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서로 다른 각도의 사선 벽들은 규칙적으로 이어지면서 내부를 구축해가는데, 파빌리온의 실루엣과 형태, 빛의 양, 가구의 위치, 계단의 형태 등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멀리서 볼 때는 사각형이지만 가까이서 볼 때는 뒤틀린 사선이 이어지는 파빌리온의 내부의 뒤틀린 벽들은 이용자의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도록 만든다.
동선이 끝나는 곳에는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배경이 있기를 원하였다. 파빌리온의 위치를 애게 해(Aegean Sea)로 정한 이유이다. 그리스를 둘러싸는 이 바다는 우리나라의 다도해(多島海)처럼 푸른 바다 사이로 크고 작은 섬들이 자리잡고 있는 경관이 특징이다. 발걸음이 끝나는 곳에 있는 경관이 흰 물결이 너울거리는 바다, 가파른 섬과 해안선의 연속되는 경관, 그 절벽 군데군데 위태롭게 서 있는 새하얀 집들이라면 이국적인 동시에 친숙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파빌리온의 내부가 자아낸 공기와 대비되는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