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VECTOR TO VECTOR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그래픽으로 구현해왔다. 밟고 있는 땅을, 살아가는 공간을, 심지어는 금방이라도 숨 쉴 것 같은 인간까지도.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디지털상의 움직임을 현실로 다시 가지고 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로봇이라는 매개체는 너무도 쉽게 이걸 가능케 한다.
기획 기간을 빼면 3일이 걸렸다. 무지하게 불편한 의자부터 다리가 희한하게 생긴 의자까지 정말 순식간에 탄생했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진행한 이 '얼토당토않은 의자 만들기'는 나에게 디지털의 현실화를, 그리고 그 가능성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했다. 나의 상상은 괴상하게 비틀려 단 몇 분 만에 내 눈앞에 당도했고 직접 앉아보고 손끝으로 느끼면서 이게 나의 상상이었구나, 이렇게 불편하니 상품화는 될 수 없겠다,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디지털과 로봇은 상상 이상으로 세밀했으나 현실이 그렇지 못했다. 작업실 온도에 따라 열선의 상태는 달라졌다. 전압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서도, 스티로폼을 자르는 와중에도 시시각각으로 달라졌다. 그러나 가장 많은 오차를 낸 원인은 역시 나에게 있다.
로봇이 아무리 정밀하게 움직여도 그걸 다루는 나는 섬세하지 못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원점을 정확하게 맞추지 않아 모듈은 모듈이 되지 못했고 처음 만들었던 하트는 조각난 채 덩어리로 남았다. 결국 마지막 작업이었던 의자마저 나중에 따로 손을 봐야 했다.
앞으로 로봇은 더 많은 산업에서 사용될 것이다. 우리가 했던 목업 테스트용으로도, 정밀한 손을 요구하는 작업에서도. 이번 캡스톤 설계를 통해 나는 잠재력에 대해 배웠고 그 가능성을 맞닥뜨렸을 때 놀라지 않을 눈을 길렀다. 로봇을 내 손처럼 사용하게 될 만큼 능숙해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마도 그건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