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여러 사람이 공존하고 또 어울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질서가 중요하고 구분이 명확한 곳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온 '비산중학교'는 위와 같이 대립 되어 보이는 학교의 성질을 구조적인 특성을 이용해 조화롭게 풀어나갔다.
그림과 같이 1,2,3,4번으로 나누어 본다면 1,2,3번은 '디귿'자이다. 비산중학교의 2층은 1학년이, 1번은 2학년, 3번은 3학년, 2번은 교무실로 쓰인다. 또한 3학년만 사용하는 음악실은 3번에 있다. 이는 층과 구조 모두를 활용하여 사람들을 구분 지음으로써 평등하지만 명확하게 질서를 만들었다. 각자 다른 학년끼리 마주할 일이 없고 높은 학년이 아래층을 사용하는 등의 잠재적인 불만 또한 잠재운다. 2번에 위치한 교무실은 어디에서도 이동하기 편하게 되어 있어 선생님과 학생 모두의 동선이 효율적이다. 모든 학년이 사용하는 체육관과 급식실인 4번으로 가는 길은 1학년,2학년이 모두 하나의 통로로 쓴다. 급식실 이용에는 순서가 있는데, 줄을 4번부터 2번까지 일자로 세울 수 있어 동선이 꼬이지 않고 학생들이 질서를 유지하기도 쉽다. 덕분에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리저리 밀리지 않고 쾌적하고 또 빠르게 급식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체육관은 또한 강당으로도 쓰였기 때문에 축제나 졸업식처럼 사람들이 몰릴 때에도 4번과 2번 사이의 통로에서 질서를 잘 유지할 수 있었다. 학교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F'자 모양이다. 여기에는 사각형 모형으로 된 비어있는 2개의 공간이 있다. 바로 4번과 1번 사이의 공간과, 앞서 말한 1,2,3번 사이의 ㄷ 모양의 공간이다. 보통 흙으로 된 운동장만 갖추고 있는 대부분의 학교와 달리,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운동 특성에 따라 효율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모래로 된 4번과 1번 사이의 공간은 운동장으로 축구나 야구 등 단체로 해서 큰 공간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기 좋다. 이와 달리 1,2,3번 사이의 공간은 소위 '뒷마당'으로 일컬어지는데, 이 공간은 콘크리트 바닥으로 되어있어 줄넘기나 플라잉디스크 등의 운동을 먼지가 날리지 않고 하기에 용이하다. 운동장과 4번 쪽으로는 정문이, 뒷마당과 3번 쪽으로는 후문이 있다. 우리 학교에는 아주 다양한 곳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등교길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정문 쪽에는 외부의 대규모 체육 시설과 주택 단지가 있고 후문 쪽에는 산길로 이어져 있어 정문과 후문은 아주 다른 길로 우리를 인도했다. 또한 뒤에 산이 있었기 때문에 하이킹과 트래킹 수업이 종종 진행되었는데, 이 때는 후문만을 사용해 선생님께서, 혼돈 없이 인원 수를 확인하고 통솔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구역과 다르게 3구역에는 1층이 존재하지 않는 필로티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야외 체육활동이 가능했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F자 모양의 특이한 형식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인상적이었으나 평소 봐왔던 타 학교들과는 달랐기에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3년 동안 몸소 중학교의 건물 곳곳을 체험해본 결과 이는 매우 효율적이고 모든 곳곳이 허투루 지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덕분에 어떤 공간을 마주했을 때 단순히 건물의 외향보다는 어떻게 쓰임새가 쓰일까, 어떤 효용을 가져다 줄까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것이 지금의 건축학도로 이끈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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